한 시민이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를 조망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정치인은 모든 국민(이라고 쓰고 유권자라고 읽는다)이 좋아하는 정책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책 공간 제한 탓에 부자와 가난한 자, 노동자와 자본가, 서울 시민과 농어촌 주민, 노인과 청년, 여성과 남성이 다 같이 환영하는 정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전쟁이나 테러같은 대외 위기가 발생해서 온 국민이 집결하는 ‘깃발 결집 효과’ 정도가 드문 예외다.
뒤집어 보면 모든 집단으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는 정책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걸 달성한 게 바로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집값이 너무 올랐다며 무주택자는 절망했다. 시골에 집이 있는 사람은 수도권에 비해, 강북 주택 소유자는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며 분노했다. 집값이 많이 오른 사람조차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너무 크다며 ‘우리가 범죄자냐, 왜 적대시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임대차 3법 전후로 전세 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때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함께 정부를 성토했다.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깊이 생각해 볼 중요한 사례다. 주제가 너무 뜨겁다 보니 성토와 변명만 걷잡을 수 없이 진행돼, 냉정한 진단과 차분한 논의는 거의 불가능했다. 지난 9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건강한 토론과 논쟁’을 촉구하며 출간한 <부동산과 정치(오월의 봄)>는 지난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책임 있는 당사자의 자성과 평가라는 점에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적절하다. 심지어 책의 내용 대부분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지난 정부 부동산 정책은 대통령이 여러 차례 사과해야 할 정도로 동네북 신세가 되었고, 민주당이 정권을 잃는 핵심 요인이 되었을까?
■공급 적대시 주장에 선긋지 않아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공급 부족론이었다. 김 실장은 부당한 정치 프레임 공세라고 항변하면서도 동시에 3기 신도시나 도심 공급 확대를 더 일찍 더 과감하게 추진해서 공급부족론을 조기 진화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인정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입주 물량과 계획 물량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주택 공급을 많이 했다’고 자평하면서도, ‘2.4 공급대책 같은 것을 더 일찍 착수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2021년 11월 제2차 국민과의 대화).
아파트는 인허가를 받아 착공에 들어간 후 준공 시점까지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 지표가 여럿일 수밖에 없다. 우선 공급의 장기선행지표인 인허가부터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40만5천호)는 인허가 물량이 박근혜 정부(41만7천호)에 비해 2.8% 적었을 뿐 이명박 정부(31만4천호)보다는 29.1% 많았다. 관심의 초점인 서울의 인허가는 문재인 정부(4만5천호)가 박근혜 정부(3만5천호) 및 이명박 정부(3만8천호)에 비해 20% 이상 많았다. 단기선행지표인 착공은 모든 지역에서 인허가보다 더 뚜렷하게 문재인 정부의 공급이 많았다. 당장 시장에 나오는 동행지표인 준공의 경우 문재인 정부는 전국에서 39만5천호로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비해 대략 50%가량 많았으며, 수도권과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의 아파트 공급은 모든 지표에서 낮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다수에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공급에 소극적이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현실과 인식의 괴리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보수 진영의 정치 공세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원인이 있다.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 중 일부는 공급 확대에 대해 ‘토건세력’이 주도하고 ‘투기꾼’들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기 위한 책략 정도로 비판해왔다. 민주당 집권 후 이러한 인식을 정부가 공유하느냐가 관심이었던 시기에 민주당 정부의 책임자들은 한 번도 이런 시각에 분명히 선을 긋지 않았다. 김 실장은 이번 책 뿐 아니라 과거의 다른 책에서도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그런 입장이 정책 책임자 목소리로 국민에게 전해진 바는 없다.
■엉뚱한 청와대 조직 구조
김 실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코로나 팬더믹 대응으로 각국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폈고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 상황에서 집값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고 한국에서도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이 이것을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무시하고 부당하게 공격했다는 억울함도 묻어있다. 인구와 소득은 주택 수요를 결정하는 근본요인이지만 이 변수들은 단기에 크게 변화하지 않으므로 유동성과 금리가 주택 수요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하지만 이 점에서도 문재인 정부 초기의 부동산 정책은 엇박자가 없지 않았다.
첫째 청와대 내 부동산 정책 담당 부서를 전례 없이 경제수석실이 아닌 사회수석실로 한 것이다. 부동산에 영향을 미치는 공급, 세제, 금융 중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공급을 제외하면 세제와 금융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소관 업무이고, 기준 금리와 통화량을 결정하는 한국은행과의 소통 창구 역시 기획재정부이다. 금리나 대출 정책의 주관 부서도 아니고 전문성도 없는 사회수석과 국토부 장관이 ‘금리와 유동성이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에 부동산 콘트롤 타워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실장은 대통령이 주거복지를 중시해서 사회수석에게 맡겼다고 짐작한다는데, 취약 계층 주거를 챙기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부동산 정책의 중심이 되겠나.
둘째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밀물 때에 모든 배가 위로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늘어난 유동성을 주택 매입보다 생산적 투자로 돌리고 싶겠지만 특정 산업이나 시장에 쉽게 가둘 수 있다면 그게 유동성이겠나. DTI, LTV 규제를 한껏 강화하고 DSR 규제를 도입해도 부동산 매수세가 잘 꺾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출 제한은 국민들의 수용성이 극히 낮은 정책이다. 집 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부자집 자식들은 대출 없이 아파트를 사는데, 흙수저는 빚을 내서 사는 것도 못하게 하냐, 사다리 걷어차기냐’라는 반발을 정치인들은 피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강한 대출 규제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또 정치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았기 때문에, 대출 규제 강화기에도 그다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니 가뜩이나 강했던 대출 규제를 더 강하게 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는 것은 잘못된 평가다.
■헛된 약속이 신뢰마저 무너뜨려
김 실장은 교훈 중 하나로 ‘집값 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 것’을 들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또는 시장과의 심리전 차원에서 아파트값 잡겠다고 약속했던 호언장담이 다 헛말이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나는 이 점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언제까지 팔 시간을 드리는 거다’ ‘지금 안 팔면 후회할 거다’는 말을 남발한 것도 큰 문제지만, 대통령의 목소리로 ‘집값 잡을 자신있다’(2019년 11월 제1차 국민과의 대화)라고 한 것은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정말 자신이 있어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면 어처구니없는 인식의 문제지만,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구두 개입이었다면 더 큰 문제다. 정책 당국자가 시장 가격에 대해 약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틀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신뢰가 무너진다. 억지로 가격을 통제하려고 하면 부작용은 더 커진다. 심지어 자신이 결정하는 정책 수단에 대해서도 함부로 약속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수용성이 떨어지는 정책은 임계치에 이르면 약속과 무관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 강화와 보유세율 상향 조정을 약속하려면 국민들이 수용할 것인지부터 면밀히 검토한 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팡질팡 정책이 되고 신뢰는 무너진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정책 당사자가 임기 중 정책에 대해 되돌아보고 공개적으로 스스로의 평가를 밝히는 것은 의미있고 용감한 일이다. 논의가 아무리 잘 풀려도 본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감정적 비판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쪽에서는 정치적으로 불리한 논의라 생각해서 이 책 출간을 썩 내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워낙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에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왕 논의의 단초가 나온 만큼 부동산 정책과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로 한 걸음 전진하기를 희망한다.
신현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