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18일 올해 세수가 전년도에 비해 54조5천억원(-13.8%) 줄 것이라는 요지의 세수 재추계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라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도 애초 계획했던 58조2천억원을 훌쩍 뛰어넘어 9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난 정부가 ‘방만 재정’과 ‘재정 중독’에 빠져 국가부채가 급증했다고 비난하며 재정 건전화 의지를 거듭 피력해왔다. 동시에 당선 직후부터 법인세 과표구간 조정, 세율 인하, 배당소득 과세 부담 완화, 기업 상속 세제 완화와 부동산 관련 세부담 경감 등 전방위적 감세를 추진했다. 정부는 이런 감세 조처가 5년간 60조원의 세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추산한다.
■ 공염불에 그친 재정 건전화
우리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 미국과 영국의 역사적 사례에서 감세는 재정 건전화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파악한 바 있다. 미국의 케네디 정부는 감세를 통한 재정 건전화에 성공했지만, 이것은 출발점이 소득세 최고세율이 90%를 넘는 극단적 상황에서의 감세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뿐이다. 영국 대처 정부도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감세보다 더 크게 증세를 도입한 덕택에 재정 건전화를 이룰 수 있었다. 오로지 감세만 도입한 미국 레이건 정부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재정 악화를 불러왔다. 감세와 재정 건전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만 보면 재정 건전화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달 18일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가 전년도에 비해 54조5천억원(-13.8%) 줄 것이라는 요지의 세수 재추계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라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도 애초 계획했던 58조2천억원을 훌쩍 뛰어넘어 9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극심한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재정 지출이 급증한 비상시국의 적자에 육박하는 규모다.
물론 올해 세수 감소가 오로지 감세 조처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하지만 감세가 아니라 경기 위축 탓에 세수가 줄고 적자가 확대됐다는 항변은 전혀 위안을 주지 못한다. 세수 악화를 불러온 주된 요인인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1.4%·국제통화기금 성장률 전망)이 미국(1.8%)보다 부진하고 만성적 저성장 국가인 일본과 동일한 수준의 성장을 하는 것도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당선되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변명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트루먼 대통령이 강조한 ‘The Buck Stops Here’란 글귀가 적힌 명패를 집무실 책상에 두고 싶다고 한 바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백악관 나무를 깎아 만든 명패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바 있다. 이 문구가 단순한 멋진 말이 아니고 명패도 그저 그런 장식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윤 대통령은 세수 부족과 적자 확대를 스스로의 문제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 반복되는 대규모 세수 예측 실패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엉망이 된 세수 예측이다. 기재부는 세수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예상치보다 59조1천억원 덜 걷힐 것이라고 발표했다. 금액으로 최대 규모이고, 오차율(-14.8%)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세수 진도율이 예년에 비해 현저히 낮은 현상이 연초부터 지속되면서 재정 전문가들이 대규모 세수 결손을 경고할 때, 정부는 ‘상저하고’(전반기에 부족한 세수가 하반기에 회복될 것) 운운하며 문제 자체를 회피해왔다. 그러다 연말이 가까워오고 더는 변명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마지못해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기재부 세제실장은 발표장에서 “방향성은 다르지만 3개년 연속 큰 폭의 세수 오차가 발생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세수 예측은 다른 모든 예측과 마찬가지로 족집게처럼 맞출 수는 없다. 하지만 올해의 대규모 세수 예측 오류는 규모뿐 아니라 우리나라 예산 수립 과정과 책임 주체 등에서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차트는 김영삼 정부 이래 지난 30년간의 세수 오차율을 보여준다(김영삼 정부는 1993년 2월에 출범했지만 그 이듬해인 1994년 예산안부터 편성하였기 때문에 1994~1998년까지의 예산이 김영삼 정부가 수립한 예산). 양의 값은 예산 대비 실제 세수가 더 많은 ‘초과 세수’를, 음의 값은 반대로 ‘세수 부족’을 나타낸다. 통상 5% 이내 오차는 용인되는 수준이므로 이를 넘는 것을 ‘대규모 오차’로 정의하고 짙은 색으로 표현했다. 빨간색은 보수 정당(민주자유당부터 국민의힘까지) 집권기, 파란색은 진보 정당(새정치국민회의부터 더불어민주당까지) 집권기다. 이를 보면 최근 몇 년간의 오차는 ‘송구스럽다’는 한마디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오차는 처음일 뿐 아니라 올해의 세수 결손 방향의 오차율 –14.8%와 2021년 초과 세수 방향의 오차율 21.7%는 각각 지난 반세기 동안 최대치다.
■ 정치의 덫에 빠진 세수 예측
대규모 오차를 정부별로 보면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세수 부족 방향의 대규모 오차는 6번 모두 국민의힘 계열 정부에서 발생했다. 반면 초과 세수 방향의 대규모 오차는 2016년에 한번 국민의힘 계열 정부에서 발생했고 민주당 계열 정부에서 여섯 번 발생했다(2017년 예산은 대통령이 탄핵된 2016년 편성된 것이라 제외하고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김영삼 정부 초기 3년 동안 오차율은 극히 미미하다가 후반부 2년 동안 대규모 세수 부족이 발생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극적 반전해 초기 2년 동안 대규모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후반부 대선이 있던 해에 대규모 초과 세수가 다시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정반대로 2009년 대규모 세수 부족이 발생했다.
장기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패턴이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일단 이런 풀이를 해볼 수 있겠다. 민주당 계열 정부는 지속적으로 예측을 뛰어넘는 경제 성장을 이끌어 계획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었고, 국민의힘 계열 정부는 반대로 경제 운영에 실패해 세금 부족에 시달렸다. 이런 풀이는 아마 용산과 여당 그리고 기재부 모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남는 것은 기재부 예측 자체에 혐의를 두는 해석이다. 세수 부족은 세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했을 때, 초과 세수는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예측했을 때 발생한다. 세수를 과잉 예측하면 정책을 펼 수 있는 공간이 확 넓어진다.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세수가 들어올 것이므로 지출을 늘려도 되고, 세율을 낮춰도 된다. 반대로 세수가 부족하다고 예측되는 경우 정책 선택의 여지는 협소해진다. 지출을 늘리거나 감세에 나서면 무책임하다고 비난받기 십상이어서다.
지난 30년간 보수 정당이 집권하면 기재부는 세수를 과잉 예측해서 감세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반대로 진보 정당 집권기에는 과소 예측으로 재정 확대의 싹을 자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일은 이런 의심을 더 증폭시킨다. 기재부는 2020년과 2021년 민주당 정부에서 예산을 짤 때 비관적으로 세수 전망을 해서 민주당의 발목을 묶고,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초과 세수가 53조원 발생할 것이라며 이틀 만에 추가경정예산안을 만들어 지출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작년 윤석열 정부의 대표 정책인 감세안이 문제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세수 예측을 장밋빛으로 그렸고 그 후과가 지금 닥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 지출 확대와 축소, 증세와 감세 등 재정 정책은 정당별로 다른 철학과 원칙에 의해 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선거에서 평가받는 것이다. 하지만 세수 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이라 정확도가 생명이지 당국의 의지나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면 안되는 영역이다. 세수 예측 개선을 위해 미봉책이 아닌 주체, 과정, 방식에 대한 전면적 평가와 보수가 필요하다.
신현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