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제주에서 열린 2023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경제단체 행사에 기조 연사로 나서 공개 연설을 해 이목이 쏠렸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롯데호텔제주에서 열린 ‘2023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이 포럼에는 전국 업종별·지역별 중소기업 대표 400여명이 참가했다. 이 전 대통령이 공개 연설을 한 것은 2018년 뇌물·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후 5년여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수년 동안 오지 여행을 하느라고 여러분을 볼 수가 없었다”며 “작년 연말에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지금 중소기업인들을 한자리에서 처음 뵙는다”고 말을 뗐다. 뇌물·횡령 혐의로 구속수감된 기간을 ‘오지 여행’에 빗댄 것이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대 범죄를 저질러 사법적 단죄를 받은 데 대한 사과나 성찰은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초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한 달 만에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전 세계 154개국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먹는데 왜 우리만 그랬는지 모르겠더라”라고 말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확산될 당시 “관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말한 것과 사뭇 다른 태도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극복한 과정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유럽 등 각국 정상들을 만나면 서로 내 옆에 앉고 싶어했다. 당시 전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우리는 0.2%지만 플러스 성장을 해서 세계로부터 칭찬받았다”고 자찬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재임하실 때 대·중소기업 양극화의 해법으로 ‘동반성장’이라는 시대적 아젠다를 제시하셨고, 동반성장위원회 출범을 시작으로 오늘날 납품대금 연동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며 “우리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했던 대통령”이라고 추어올렸다. 이날 포럼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국세청장,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지낸 백용호씨와 중소기업청장과 코트라 사장,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홍석우씨도 동행했다.
경제단체 행사에 비리 혐의가 인정돼 처벌까지 받은 전직 대통령을 기조 연사로 초청한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재계에서는 “비리 혐의로 처벌받은 전직 대통령을 메인 스피커로 초청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기중앙회 쪽은 이 전 대통령을 초청한 이유에 대해 “역대 대통령 중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컸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 중소기업 신년회와 송년회를 대통령 참석 행사로 격상시키고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킨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김기문 회장과의 오랜 친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첫 임기를 이명박 정부 출범 즈음에 시작했고, 이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비공식적인 만남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의 친분이 돈독하다. 두어달 전에 회장이 직접 초청을 해 수락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8년 수백억원대 뇌물수수·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추징금 57억8천만원이 확정됐다. 지난해 6월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같은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으로 남은 형기와 벌금을 모두 면제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 전 대통령 수사와 기소를 지휘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데 이어 5월에는 청계천을 산책하는 등 공개 행보를 넓혀왔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현역 의원을 포함해 친이명박계 30여명과 함께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5월 청계천 산책 때 기자들이 정치 활동 재개 여부를 묻자 “나는 총선에 관심이 없고,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김회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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