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6.28.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향신문 김창길기자
저출산·고령화와 노인 빈곤, 탄소 중립 등 우리 경제와 사회를 둘러싼 위험들은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이런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실탄’ 마련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선 중장기적 세수 확충 로드맵 수립이 절실하다. 국가재정전략회의를 둘러싼 세수 풍경과 정부의 세수 전략은 어둡거나 비어있다.
일단 현재의 세수 상황은 역대급으로 나쁘다.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국세 수입은 134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3조9천억원이나 줄었다. 올해 예산에 반영돼 있는 정부의 세금 수입 목표액(400조5천억원) 중 실제 걷힌 세금 비율인 ‘세수 진도율’은 33.5%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세수 펑크(세수 결손) 규모가 40조원 안팎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정부도 부인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8일 <한겨레>에 “박근혜 정부 때처럼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증세가 가져올 정치적인 부담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규모 세수 펑크에도 증세 기조로의 전환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법인세·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 전방위적인 감세를 단행한 정부는 올해도 전기차·바이오 기업의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감세 조처를 지속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런 감세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투자세액공제 대상을 추가하는 등 외려 동조하는 기류다. 증세 기조 전환을 위한 우군도 작은 셈이다.
물론 세수 확충 로드맵이 없는 건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웠다가 비과세·감면 축소 등 사실상 적극적인 증세를 단행하다 봉급생활자 등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던 박근혜 정부 이후 증세는 꺼낼 수 없는 카드로 취급받고 있다. 직전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 첫해에 이른바 ‘초고소득자(과세표준 3억원 초과)·초대기업(3천억원 초과)’에 해당하는 상위 1% 미만을 대상으로 증세하는 데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는 중장기 증세 로드맵 수립을 위해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지만 실제 예산과 세제에 반영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정부의 재정 소요를 충족하기 위한 장기 세수 확충 전략을 논의해야 할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현 정부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취하면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정책의 ‘엇박자’를 반복하고 있다”며 “기후 변화, 세계 경제의 블록화 경향을 고려하면 정부의 역할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세수 확충을 위한 로드맵 수립이 절실하다”라고 주장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도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금을 더 걷어 정책을 펴는 접근 방식이 아니라 ‘안 걷고 안 한다’는 접근법을 취해왔다”며 “이런 접근법으로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구조적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조세부담률(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국세·지방세 등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2.1%(이하 202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5.0%)보다 낮다. 이른바 ‘증세 여력’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는 다른 나라에 견줘 부담이 크게 적은 편이다.
정다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당장 증세를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 4~5년은 내다보며 세수 확충을 위한 전략은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