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을 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122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등 ‘경제 외교’에도 방점을 찍으며 시작됐다. 그러나 5박7일간 일정을 마친 뒤 받아든 경제 분야의 성적표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한·미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첨단 산업에서의 기술 협력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대목은 있으나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반발을 키울 수 있다는 불씨도 남겨둔 탓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과학법 등 한국기업이 골머리를 앓는 현안에 대한 구체적 해법은 이끌어내지 못한 채 실무 협상으로 공을 넘긴 점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30일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반도체·배터리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의 한·미 공급망 협력이 한층 더 강화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재부는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이 첨단산업 공급망에 있어서도 공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이번 방미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아울러 넷플릭스에서 향후 4년 간 25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미국 기업들로부터 모두 59억달러(7조8천억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아냈고, 양국 기관·기업 간 양해각서(MOU) 50건을 체결하는 등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의 기술협력을 강화했다는 점도 성과로 꼽았다.
정부가 강조하는 한·미 공급망 협력 강화는 반대로 대중·대러 경제교류에서 한국과 국내 기업의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남긴다. 특히 우리나라와 수출입 규모가 가장 큰 중국과의 무역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나아가 중국의 반발도 확대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한-중국 무역 규모는 3100억달러로 한국의 총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9%에 이른다. 한-미 무역 규모 비중은 13.5%다. 실제 중국의 반발 조짐은 벌써부터 일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인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한국 정부가 ‘압도적 친미정책’을 펴고 있다”며 “한국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겪게 될 손실이 미국이 제공하는 보호와 투자보다 크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손에 잡힐 수준의 해법도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담기지 않았다. 오는 10월 만기되는 대중 반도체 장비 수 통제 유예 조처와 관련해서 한국 정부는 “근본적 조처를 취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했지만 실무 협상으로 공이 넘어갔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과학법에 대해서도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미국이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그물을 쳤고 그 그물에 우리의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걸렸다. 지금껏 암묵적으로 유지돼 온 정경 분리 원칙이 무너지면서 우리 기업과 경제는 글로벌 정치 변수에 휩쓸리게 된 모양새”라며 “(정부가) 경제안보론을 강조하며 미국 쪽에 줄을 서면서 우리 기업과 경제가 볼모로 잡힌 꼴”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중·러 경영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 시대에 미국 쪽에 줄 서는 동행이었다”며 “현지 생산시설이나 고용 문제가 얽혀있어 당장 직접 피해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쪽에서 사업하는 기업은 스텝 바이 스텝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준 건 보이는데 받은 것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같이 비판하며 “현찰 주고 어음을 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약속 받은 59억 달러 상당의 투자와 각종 양해각서 체결도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에스케이(SK)온과 현대차그룹의 합작공장 건설 등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와 비교해 계산기를 두들겨 봐야 한다는 뜻이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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