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미국 워싱턴디시의 의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 동안 참석자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30일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의 5박7일 미국 국빈방문은 한국 외교를 미국과 일체화시킨 무대였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비 방문으로 시작해 하버드대 연설로 마무리된 순방 내내 ‘한-미 가치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확장한다는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일방적 외교 노선은 미국과 대립하는 북·중·러가 한국을 압박하는 안보 리스크를 오히려 키웠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의 최대 성과물로 ‘한국형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한-미의 ‘워싱턴 선언'을 내세우고 있다. 한·미 정상은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해 미국의 확장억제 계획을 공유·논의하고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국의 전략무기를 정례적으로 한반도에 전개하되, 한국은 자체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한·미가 북핵 악화에 대응해 확장억제 강화 조처를 문서화한 것은 이전보다 진전된 내용이지만, 이번 조처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미가 “사실상의 핵 공유”를 하게 되었다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자,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국장이 “사실상의 핵 공유라고 보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반박하면서,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기도 했다.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중국은 사실상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고, 북한도 핵무력 증강의 구실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지난 2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워싱턴 선언'을 비난하면서, “보다 결정적인 행동에 임해야 할 환경”이 조성되었다며 도발을 예고했다. 대통령은 ‘안보’ 강화에 순방의 초점을 맞췄지만, ‘강 대 강’ 대치로 안보 상황이 오히려 불안해진 측면이 있다.
방미 기간 내내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편의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동맹’”이라며 한-미 동맹을 절대화했다.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을 겨냥하는 메시지도 곳곳에서 드러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치·안보·인도적·경제적 지원을 언급하고,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도 거듭 거론했다. 한-미 정상 선언의 대만 관련 표현에 항의해 중국 외교부가 지난 27일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를 초치하는 등 한-중 관계의 위험 신호는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리스크를 관리할 방안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미국에 모든 것을 걸고’ 질주하고 있다.
이번 순방을 통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혔던 경제 분야에서는 구체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제대로 요구를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관련 협의에 대해서도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처해 있는데, 대통령은 경제도 ‘미국 우선주의’에 동조만 한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