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머리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8일 정부의 유류세 인하 연장 결정은 가뜩이나 악화한 세수 여건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미 올해 2월까지 세금이 전년 대비 16조원 가까이 덜 걷힌 상황에서 또 세금 감면 카드를 꺼낸 것이어서다. 공공요금 인상 지연으로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현 정부의 말과 실제 정책 간의 엇박자도 두드러진다.
기획재정부는 애초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를 연장하되 인하 폭을 줄이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해왔다. 휘발유·경유 등 국내 석유류 가격이 전년 대비 하락세로 돌아선데다, 세수 부족 우려도 고려해서다. 기재부는 앞서 지난해 말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유류세 인하 폭을 단계적으로 조정(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방침이 뒤집힌 건 여당 요구 때문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물가와 유가 동향, 그리고 국민 부담을 고려할 때 유류세 인하 조처를 당분간 연장할 것을 정부가 적극 검토해주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여당 공개 요구 하루 만에 정부가 화답한 셈이다.
세금 감면 연장은 ‘발등의 불’인 세수 부족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올해 들어 2월까지 국세 수입이 지난해 1~2월에 견줘 15조7천억원이나 줄며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조차 지난 7일 “(올해 세수는) 당초 세입 예산을 잡았던 것보다 부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인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정당국 안팎에선 시간이 문제일 뿐 연내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불가피하단 시각도 빠르게 확산했다.
앞서 유류세 20~37% 감면 조처를 시행한 지난해에도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세수가 전년 대비 5조5천억원이나 덜 걷힌 바 있다. 정부는 올해 교통세 세수를 지난해와 같은 11조1천억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1~2월 누적 교통세 세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천억원 감소한 1조8천억원에 그치며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나아가 유류세 감세는 교통세뿐 아니라 교통세의 15%를 부과하는 교육세, 유류 판매 가격의 10%인 부가가치세 세수 등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친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올해 세입 예산을 짤 때 유류세 인하를 어느 정도 유지한다고 가정하고 추계치를 반영했다”고만 했다.
한전·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 사정은 더 나쁘다. 한전은 올해 5조원 이상 적자가 발생할 경우 내년에 한국전력공사법상 회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해 자금 조달 문턱이 막힌다. 가스공사 역시 요금 인상이 불발되면 공사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실질적 손실 누적액(미수금)이 지난해 말 8조6천억원에서 올해 말 12조9천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실에선 현 상황과 동떨어진 메시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재정 건전성 강화는 우리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무분별한 현금 살포와 선심성 포퓰리즘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총선을 고려한 에너지 세금 감면, 공공요금 인상 보류 등으로 재정과 공공기관 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졌지만 엇박자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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