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전기·가스 요금 조정 논의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로 인해 대규모 적자와 미수금에 허덕이는 관련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이 안갯속을 달리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요금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을 그동안 전 정권 탓으로만 돌리다 발이 꼬여 결정을 못 하고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긴 호흡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전력 생산에 드는 연료비가 크게 올랐지만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지난해 32조6천억원의 적자를 낸 한국전력은 현재 원가 회수율이 70%가량에 그친다. 이 때문에 매달 네차례 사채를 발행해 적자를 메우고 있다. 올해 5조원 이상 적자를 내면 내년에는 사채 발행 한도(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5배)를 초과하게 된다. 현재 원가 회수율이 62%에 그치는 한국가스공사는 가스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지난해 말 8조6천억원으로 늘어난 미수금이 올해 말엔 12조9천억원까지 불어난다. 이런 형편을 고려하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불만 여론을 의식해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해 들어 하락세를 보이는 것에 기대를 걸어왔던 듯하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에 의존해 정책 결정을 하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 ‘오펙(OPEC) 플러스’를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2일 국영 언론을 통해 5월부터 연말까지 하루 50만배럴 감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를 포함한 오펙 플러스 회원국들은 지난해 10월 원유 생산량을 하루 200만배럴 감산하기로 했는데, 다음달부터 하루 약 116만배럴을 추가 감산한다. 이 소식에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 가격이 2일 6.4%나 급등했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에너지를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가격 결정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 변동은 국민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경기 흐름, 향후 경제운용 전략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번 상승기엔 유류세 감세와 공기업 부담만으로 감당하기엔 국제 가격 상승 폭이 너무 크다. 국내 가격·요금에 반영 폭을 키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큰 국면이다. 고통을 미뤄두자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가격·요금 인상이 불가피함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