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연합뉴스
앞으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 후속공정 지연 등에 차질이 발생하는 일이 한 달에 2번 이상 발생하면 조종사 면허가 정지된다. 정부의 건설 현장 월례비 퇴출 방침에 따라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주 52시간제 준수를 내걸고 ‘칼퇴근’을 하는 등 준법투쟁에 나서자 맞대응으로 나온 조처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최대 1년 면허 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성실한 업무수행 위반 유형’ 15개를 제시했다. 지난달 28일 현행 국가기술자격법의 면허 취소 사유인 ‘성실 의무’(국가기술자격 취득자는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품위를 손상해서도 안 된다)를 구체화한 행정처분 가이드라인을 한 차례 발표했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추가 세부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월례비 등 수수, 현장 점거 등 공사방해, 부당한 태업 등을 성실의무 위반 3가지 유형으로 꼽았는데, 건설업계에서는 더 자세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이에 국토부는 이날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 후속 공정 지연 등의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월 2회 이상 발생하거나, 원도급사의 정당한 작업지시를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가 월 1회 이상 발생한 경우 등 15가지 유형에 해당하면 면허 정지 대상이 된다고 세부 기준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기준을 국토부 산하 지방청에 행정처분 판단 기준으로 하달할 예정이다. 또 대한건설협회 등 민간업계에도 공유해 신고에 참조하라고 할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면허 정지를 판단할 기준이 명확히 마련된 만큼, 개별 현장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신고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면허 정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생계를 박탈하는 고강도 행정 처분인데도, 정부가 취소 기준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훈령·고시와 같은 법령으로 구체화하지 않고 정부 내부 지침 형태로 일방 제시해 논란이 예상된다. 국토부는 국가기술자격법의 적용을 받는 다른 수많은 자격(면허)에 대해서도 시행령 등에 구체적인 면허 정지 요건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타워크레인에 대해서만 법령 개정으로 구체화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월례비를 받은 조종사뿐 아니라, 월례비를 받지 않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조종사의 면허까지 정지하겠다고 나선 셈이라 노정 갈등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별한 사유 없는 작업 거부’ 등을 두고 이견이 해소되지 않으면 노정이 법원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이 늘어날 것으로도 예상된다.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정부가 사회적 논의로 월례비 등 문제를 풀어가지 않고, 일방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을 악마화하는 탓에 폐단만 더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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