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이 지난 10월25일 대통령실 인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는 차량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회에 계류 중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시행하면 쌀 과잉 공급이 심해져 남는 쌀의 시장 격리에 2030년까지 연평균 1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야 하다는 추산이 나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4일 펴낸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자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쌀값이 상승하고 쌀 농가의 소득 안정이 강화되는 효과가 예상되지만, 쌀 초과 공급 규모가 증가해 정책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요구로 작성해 전날 민주당에도 전달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수확기와 햅쌀이 나오는 시기(단경기)에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남는 쌀을 사들이도록 의무화하는 게 핵심이다. 논에 다른 작물을 심으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담았다. 민주당은 쌀값 안정을 위해 지난 10월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30년까지 쌀 공급 과잉 규모가 연평균 20만1천톤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벼 재배 면적보다 쌀 소비량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해 당분간 수급 불균형이 지속하리라는 것이다. 연구원은 개정안 시행 시 남는 쌀 규모가 기존 전망치의 2배인 연 평균 43만2천톤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작물 재배 지원 사업으로 벼 재배 면적이 일부 줄지만, 정부의 남는 쌀의 시장 격리로 쌀값이 오르며 벼농사짓는 농가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정부가 쌀 초과 생산량 매입에 투입해야 하는 예산을 연평균 9666억원으로 추정했다.
쌀 정책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쌀 소비가 계속 감소하는데 남는 쌀의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면 공급 과잉이 더 심해질 수 있다”며 “쌀이 계속 초과 생산되면 격리 의무화에도 2030년까지 평균 쌀값은 올해 수확기 평균 가격인 80㎏ 한 가마당 18만7천원보다 5.4% 하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담당 상임위인 농해수위가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아 직접 국회 본회의에 올릴 수 있다. 이 법안은 오는 18일 상임위 통과 60일째를 맞는다. 정부는 이달 30일 열리는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소병훈 국회 농해수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간사 간 협의를 하겠지만 개정안에 손댈 부분이 없다면 이대로 본회의로 보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매년 농민과 다투며 쌀을 수매하기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 뒤 적극적으로 벼 생산 조정을 하면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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