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바트 인도여성자영업협회(SEWA) 공동설립자는 협동조합 정신을 노동운동에 결합해 여성의 완전고용과 자립을 위해 헌신해온 인도의 노조운동가이다. 올해 세계협동조합대회 2일차 행사에 기조연사로 나선다. 인도여성자영업협회(SEWA) 제공
엘라 바트 인도여성자영업협회(SEWA, Selfemployeed Women Association) 공동설립자는 여성들의 완전고용과 경제적 자립이야 말로 지역사회 발전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한 인도의 협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운동가다.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2일차 행사로 열리는 ‘협동조합 정체성에 헌신하기’ 세션에서 기조연사로 나선다. 전자우편을 이용해 그가 몸담아 온 인도여성자영업협회 활동을 중심으로 사전인터뷰를 했다. 바트 공동설립자는 인터뷰에서 “오늘날 전환의 시대에 기후위기, 사회 불평등 심화 등 다양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작점은 지역사회와 그 주민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변호사가 드물었던 1950년대 그가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데는 인도 독립운동가인 간디의 영향이 컸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직후, 인도에서는 공정한 국가 건설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었고, 독립운동가인 간디가 설립한 섬유노동조합이 그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며 아마다바드에 있는 섬유노동조합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인도의 맨체스터라고 불리는 아마다바드는 섬유산업의 본고장이자 간디가 태어난 곳이며 비폭력 투쟁의 중심지이다. 당시 노동권 보호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하루 품삯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공식노동자들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통계 수치로도 잡히지 않는 이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건강, 산재보험 등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 중 대다수가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거나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여성이라는 점이다. 엘라 바트가 1972년 인도여성자영업협회를 설립한 배경이다. 인도여성자영업협회는 현재 170만 조합원과 160개의 협동조합, 15개 경제연합체로 구성된 인도 최대 여성노동조합이자 협동조합이다. 이들의 핵심 목표는 비공식노동자인 여성노동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확보하고 이들의 연대를 통한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인도의 경제, 사회적 제도 틀 안에서 여성 노동권 보장과 경제적 자립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트 설립자는 여성 스스로 경제, 사회적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그들이 하는 일의 영향력을 인식하는 데 가장 중점을 뒀다. 여성들이 노동자로 그치지 않고 전문가로서 조합원을 이끌며 공동체를 조직하는 협회의 주춧돌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는 “가난하지만 다수인 여성들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비로소 가난과 폭력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며 “협회, 협동조합, 노동조합들이 함께 진용을 갖춰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에 평화로운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합원 교육 훈련과 함께 바트가 강조 했던 것은 여성들의 금융과 시장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스스로 자금을 확보하고 안전하게 자산을 쌓아 갈 수 있도록 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고 소유하는 인도의 첫 여성협동조합은행인 마힐라세와(Mahila SEWA)를 설립했다. 그는 “마힐라세와 협동조합은행은 소액금융 (Microfinance)기관으로 금융권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설립됐지만, 결코 그 영향력은 ‘마이크로’하지 않다”며 “여성들은 더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지 않고, 본인의 이름으로 된 계좌로 돈을 빌리고 갚을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의 출발점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마힐라세와 협동조합은행은 약 9만명의 예금자를 포함한 조합원들에게 예·적금부터 대출, 주택지원, 건강보험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경제적 자립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역의 착취구조 개선과 경제적 자립으로 확장됐다. 그는 2016년에 펴낸 저서에서 자급자족하는 인도의 지역사회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자원생산자-소비자 간 약해진 연결고리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제품과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사회 내 생산, 유통, 소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바트는 지역주민을 비롯한 시민들이 이러한 상호연계성을 깨닫고 윤리적인 책임과 역할을 가질 때, 비로소 지역사회가 고립된 채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소비자와 생산자, 생산자와 원자재 간 거리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지역사회의 경제, 사회적 균형을 복원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연을 비롯한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지역주민과의 사회적 지형과 나아가 지역사회 시장과 기술의 경제적 지형까지 파괴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힘줘 말했다. 개인의 지역과, 사회, 환경에 대한 영향력을 인식하는 것에서 지역 순환 경제의 뿌리가 시작되고,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시민들의 삶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개인과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팬데믹 위기와 플랫폼 경제의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개의 전통적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제도권 밖에 있는 비공식노동자들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
마힐라세와(Mahila SEWA) 협동조합은행에서 조합원이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 마힐라세와 협동조합은행은 인도의 첫 여성협동조합은행으로 인도여성자영업협회에서 여성 조합원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했다. 인도여성자영업협회(SEWA) 제공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바트 설립자는 이번 대회 기조강연을 통해서, 지금이야말로 자립과 책임, 평등과 연대의 협동조합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 계층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한국 국민에게 전한다. 그는 “비공식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며 “사회 협상력이 부족한 소외된 노동자들의 자립을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회 계층의 연대와 협력”이라고 강조한다. 소외된 노동자들이 금융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들이 자립하기까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수 익률 목표가 낮고 투자기간이 긴) ‘인내자본’ 을 투자해 책임을 함께 공유하는 평등한 사회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역 현장과의 연계다. 지역사회 가장 낮은 곳의 소외계층과 노동자들과 함께 걸어온 인도여성자영업협회인 만큼 지역주민과 사회에 대한 고려는 빠질 수 없다. 바트 설립자는 “비공식노동자를 포함해 기후위기, 경제,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 여성을 포함한 지역주민과 지역사회가 국가의 경제, 정치, 사회를 구성하는 시작점이자 핵심 구성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역 현장에서부터 국제 협력까지, 지역 내 협동조합에서부터 외국대학과 국제기구까지 지역과 글로벌을 잇는 새로운 협력 방식과 공동체가 전환의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애정어린 돌봄과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로 가는 길은 우리가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모아서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서로 공감하며 협력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팀장
ekpark@hani.co.kr
엘라 바트 인도여성자영업협회 공동설립자 약력
- 1933년 인도 출생
- 하버드대, 예일대, 나탈대, 맥마스터대 석사학위, 바로다대 등 명예박사 수여
- 인도 국가기획위원회 위원, 여성세계은행 설립 및 이사장 역임, 국제가사노동자연합 설립, 인도 연방준비은행 중앙이사회 이사 역임
- 주요 저서: <우리는 가난하지만 다수다> <아누반드-100마일 커뮤니티 만들기> <여성, 노동,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