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중심에 둔 민주적 기업이자 결사체로서 협동조합은 정말로 일반영리기업과 다른가? 다르다면 무엇이 그 원동력이고, 어떠한 사회적 효과를 발생시키는가? 왜 그 차이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 다르지 않다면, 이는 조직모델의 한계인가 아니면 실행과정의 오류인가? 임박한 기후위기와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인류공동체의 일원인 동시에 오래된 지속가능 기업 모델로서 어떻게 전지구적 지속가능개발목표에 기여할 것인가?
협동조합은 이윤추구라는 단순한 동기가 아닌 조합원과 지역사회를 위해 원칙과 가치에 기반하여 운영되는 기업조직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원 개개인들은 일상의 협동조합 경제활동에 몰입하여, 종종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을 잊고 살아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협동조합 원칙과 가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협동조합 7대 원칙의 하나로 강조되고 있다.
오는 12월1일부터 3일까지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개최되는 국제협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ICA)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는 전세계 협동조합인들이 모여,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해 보다 심화된 토론을 진행하고, 21세기의 글로벌 위기에 함께 맞서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삶, 다른 세상에 대한 청사진과 이 속에서 협동조합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협동조합들은 1844년 근대적 협동조합 모델을 확립한 영국 로치데일 공정개척자 협동조합 이후,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협동조합인 스스로가 만든 원칙과 모델을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정받아 왔다. 이러한 협동조합 모델의 정립과 국제적 확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1895년 설립된 국제협동조합연맹이다.
다양한 협동조합 연합조직들을 주요한 회원으로 하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국제비영리민간단체 중 하나로서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도 전세계 협동조합과 협동조합인들을 국제사회에서 대표하는 조직으로 굳건히 활동해왔다.
벨기에 브뤼셀에 글로벌사무소를 두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유럽의 4개 지역사무소 및 농업, 수산업, 소비자, 노동자 (산업 및 서비스), 주택, 은행, 보험, 보건 등 8개 부문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현재 100여개국 300여 회원단체들을 통해 전세계 8억 협동조합인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산림조합, 아이쿱생협, 한국협동조합국제연대 (한살림, 두레생협, 대학생협, 전국협동조합협의회,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연합회) 등 7개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국제협동조합연맹의 부문조직인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와 수산업협동조합분과위원회의 의장국과 사무국을 각각 농협과 수협이 맡고 있다.
1992년까지 세계협동조합대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주요 이슈를 토론하는 논의의 장이자, 조직의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총회의 성격을 병행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는 조직내부 거버넌스 이슈를 다루는 총회와 특별한 주제를 다루는 대회가 분화되었다.
199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31차 대회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을 채택하였으며, 2012년 역시 맨체스터에서 열린 32차 대회는 유엔이 정한 국제협동조합의 해 기념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 설립 125주년과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 25주년을 기념하면서, 21세기의 변화하는 사회에서 걸맞는 협동조합 정체성에 대한 재검토를 위해 제안되었다.
대회 개최지로서 서울은 주요 후보지로서 초기부터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적극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먼저 지난 32회 대회 중 1992년 일본 동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에서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협동조합 모델의 전지구적 보편성을 확인하기 위해 비유럽권 국가들이 주요한 우선순위로 모색되었다.
이 중 한국은 탄탄한 전통적 협동조합 부문과 역동적인 새로운 협동조합 부문 및 사회적경제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부와 지자체 및 민간의 빠른 제도적 지원과 발전이라는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미 전세계 협동조합인들의 관심대상이었다. 이러한 국제협동조합연맹의 관심과 한국 협동조합 운동 및 정부, 서울시, 경기도, 강원도 및 여러 지방정부의 협력을 통해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진행되게 되었다.
‘협동조합 정체성에 깊이를 더하다’라는 전체 주제 아래, ‘협동조합 정체성 점검하기’, ‘협동조합 정체성 강화하기’, ‘협동조합 정체성에 헌신하기’, ‘협동조합 정체성 실천하기’라는 4가지 주요 주제와 각 주제마다 5개의 소주제를 토론하는 총 24개 세션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전세계 곳곳에서 엄선된 발표자와 토론자 100여명이 현장 또는 온라인으로 참가하여 협동조합 정체성에 관련된 여러 쟁점들을 토론하고, 현장 참가자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참가자들의 질문과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50여개국 300여 해외 참가자들과 700여 한국 참가자 등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 주관으로 농협, 수협, 아이쿱생협연합회, 한국협동조합국제연대, 서울특별시, 경기도,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한국 파트너로 함께 준비하고 있다. 또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등이 후원하고 있다.
풀뿌리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 조직들은 청년 참가자를 지원하는 ‘주춧돌’ 캠페인을 진행했다. 주춧돌 캠페인은 청년협동조합인 워크샵 및 해외 청년참가자 지원 프로그램 등과 함께 협동조합의 주역이 될 미래 세대를 위한 협동조합 운동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세계협동조합대회에서 토론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향후 협동조합 정체성의 발전 방향과 협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지속가능개발목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행동계획을 내년 스페인에서 열릴 차기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향후 10여년 동안의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갈 길을 모색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의 고민과 경험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대회를 통해 다양한 해외 협동조합인들과 교류하고 전지구적인 시야 속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엄형식 국제협동조합연맹(ICA) 글로벌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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