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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협동조합은 위기의 시대에 가장 복원력 뛰어난 기업”

등록 2021-11-30 10:41수정 2021-11-30 11:18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아리엘 과르코 ICA 회장 인터뷰

협동조합 3억개 일자리 창출
G20보다 많고 전세계 10% 차지

사람 중심 경제의 경쟁력 보여줘
코로나 이후 삶의 방향 제시

요즘 유행하는 ESG 성공하려면
이윤창출의 부산물 취급 안 돼
협동조합의 세계적 권위자 가운데 한명인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교수는 협동조합을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에 비유했다. 모순되지는 않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두가지 특성이 결합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경제적 차원의 기업이다. 반면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공익 창출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사회적 단체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 특징은 협동조합을 설명하기 어렵게 하고, 실제로 운영할 때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를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만들려는 이유다.

아리엘 과르코 국제협동조합연맹 회장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해 “공동 소유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통해 경제, 사회,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기업”으로 정의했다. 협동조합은 인간의 이기심보다 사회적 이익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기업도 얼마든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협동조합이 이뤄낸 성공은 개인의 합리성이 반드시 유일한 경제적 합리성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공유와 공익을 추구하는 경제활동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르코 회장과의 인터뷰는 11월 15~16일 전자우편으로 진행됐다.

아리엘 과르코 ICA 회장이 201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5차 아메리카 협동조합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ICA 제공
아리엘 과르코 ICA 회장이 201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5차 아메리카 협동조합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ICA 제공

- 33번째 글로벌 총회에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1844년 영국 맨체스터에 처음 설립된 로치데일 협동조합 창립자들은 그들의 비지니스를 위한 원칙을 만들었다. ‘로치데일의 선구자’로 불린 이들은 당시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아 사회에 필요한 요구들을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은 공동 소유와 민주적 운영 체제를 기반으로 했다. 협동조합의 효시인 이 모델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포함한 여러 위기 속에서도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지금 인류가 생산과 소비 활동에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을 때 다시 협동조합의 가치를 되새기고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시장의 특성과 사회적 특성이 함께 정체성을 구성한다. 시장의 특성이 지배적일 때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이윤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사회적 특성이 월등히 우세할 때는 협동조합이 경제적으로 뒷걸음치거나 한계 상황에 부닥친다. 따라서 두 가지 특성이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둘 중 하나가 희생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협동조합의 본성이 사라지고 정체성을 잃게 된다.

협동조합은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과 충돌한다. 협동조합의 경제 외적인 목적이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행동 가설에 반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경제적 행동은 인간의 이기심보다 다른 동기들에 의해 작동된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시민시장’(civil markets)의 존재로 이를 설명한다. 시민시장은 경제와 사회의 격차를 줄여 나가고 개인이나 집단이나 누구나 경제적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덜 가진 자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가진 자의 분배를 재배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돌봄을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때로는 내부 요인에 의해, 때로는 주변 사회의 경제적 동인에 의해 큰 변화를 겪어왔다. 19세기부터 20세기 후반부에 생산자, 노동자, 소비자 및 이용자 협동조합들이 주로 영국과 같은 경제 선진국에서 태동해 성장했다. 경제적 하위 계층이 스스로 시장 지배력을 키워 사회적 배제를 막아내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협동조합은 새로운 목적을 찾게 됐다. 개인 서비스 같은 특정 경제 영역에서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보다 효율성에서 더 뛰어남을 보여줌으로써 명백한 경제적 동인(이윤 추구)이 생겨난 것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진보적 사회 질서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불거졌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민주주의 공간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사회적 자본, 즉 시민의 신뢰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협동조합은 이런 역할들을 훌륭하게 수행해왔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나 국제 투자가 미치지 못하는 분야나 지역에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적합한 기업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다.

- 코로나 팬데믹, 기후변화 같은 위기의 시대에 협동조합의 역할은?

“팬데믹 동안 확인된 사실은 협동조합이 위기의 시대에 강한 복원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도 팬데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팬데믹에 필요한 사회적 요구에 잘 대응해왔다. 우리는 일자리와 상품·용역의 공급, 건강과 주거지,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등 최근 중요해진 이슈들을 진지하게 토론하고 연구했다. 일자리의 경우 협동조합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비전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청년과 이주민, 미숙련노동자, 심지어 공식적인 일자리에 접근하기 어려운 전과자나 죄수들까지 일자리를 제공한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 또한 여성에게 특히 불리했던 돌봄 노동 등의 분야에서 젠더평등을 이뤄낸 경험도 많이 있다. 협동조합은 프리랜서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했고,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도 가장 평등한 방식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일자리 복원이다. 이익을 많이 낸 기업들과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하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설립되고,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도 인류는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수준의 합의를 갖고 있다. 협동조합은 환경과 사회,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 협동조합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협동조합은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3억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는 전 세계 일자리의 10%에 해당하는 규모이고, G20이 만들어낸 일자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또 300여개의 대형 협동조합들의 매출 총합은 세계 6대 경제대국의 총생산과 비슷하다.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을 리드하는 조합들도 있고, 수익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춘 모델로도 충분히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조합들도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 달리 커뮤니티에 기반한 가치와 원칙을 갖고 있다. 협동조합이 위기에 맞서 복원력이 뛰어난 이유다. 팬데믹 이후 정상 상태로 향하는 길을 밝히는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 기업들이 내세우는 ‘이에스지’(ESG)와 협동조합의 가치는 통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기업 경영의 주요 이슈로 고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려면 이 모델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단순히 의지와 약속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환경을 기업 활동의 중심에 두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디엔에이(DNA)를 바꾸는 작업이다. 이윤 축적을 최고의 목표로 정한 뒤 (이에스지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부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은 사람과 환경을 중시하는 디엔에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아리엘 과르코 ICA 회장

1990년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아르헨티나의 공공 서비스 및 전기 협동조합 회장으로 선출됐고, 2011년에는 아르헨티나 협동조합 연합회장을 맡아 남미 지역의 협동조합 활성화에 기여했다. 2017년 ICA 회장으로 선출된 뒤 각종 강연회와 저술을 통해 협동조합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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