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경남 김해로 온 우주네는 나눔꽃 캠페인 보도 이후 모인 후원금 덕분에 3평 남짓한 여관방에서 방 2개짜리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새 집에서는 우주의 방이 생겼고 더 이상 화장실에서 설거지 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도와주산(신) 분들께. 안녕하세요. 여려(러)분들이 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이사를 오기 전 집은 작고 방도 하나뿐이라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도움을 받은 후 이사를 해서 집도 커지고 방도 2개나 있어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됨(됩)니다. 감사합니다. 또 학교에서 집이 가까워 학교에 가기도 좋습니다. 많은 도움으로 모든 것이 좋아졌으니 더 많이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하겟(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경남 김해로 온 ‘고려인 3세’ 열세살 우주(가명)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삐뚤빼뚤한 글씨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3평(9.9㎡) 남짓한 여관방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살던 우주네 가족은 지난 8월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지난 7월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보도 이후 후원금 2476만원이 모인 덕분이다.
우주네 가족이 살던 여관방은 주방 시설이 따로 없어 화장대 위에 휴대용 버너를 올려놓고 요리하고, 화장실에서 설거지해야 했다. 주방도구 등 살림살이로 방이 가득 차 세 식구가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반에서 두 번째로 키가 큰 우주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 김올레나(43)씨는 우주가 옷을 갈아입을 때면 복도로 나가야 했다.
이사한 곳은 9평(29.75㎡) 남짓한 방 2개짜리 주택. 우주는 이 집을 ‘큰 집’이라고 표현했다. 새집에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가스레인지, 티브이 등이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우주만의 방이 생겼다. “제 방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친구와 통화도 해요. 비밀의 방이 생긴 것 같아 좋아요.” 학교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가깝고, 집이 전보다 넓어져 우주는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 함께 놀기도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우주는 온라인 학습일에도 매일 학교로 가 한글 공부를 할 정도로 학교가 좋아졌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부모님이 일을 다니기에도 편하다. 주방 시설이 갖춰져 요리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김씨는 “전에 살던 곳에선 우주가 혼자 있을 때 불을 사용하면 위험할까봐 항상 걱정됐다”며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 음식을 만들어놓으면 아이가 혼자 챙겨 먹을 수 있으니 일하러 나갈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이 좋아하는 요리를 뭐든 만들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이사 온 뒤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사 온 지 2주 뒤인 지난 8월 말, 냉장고 부품을 조립하는 공장에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우주 아빠도 지난 9월 말 회사의 출퇴근 차량을 운전하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했다. 급여를 받아 지인들에게 빌린 돈과 대출을 갚고 있어 빚이 1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줄었다.
우주 아빠는 최근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 이번달에 재외동포(F4) 비자를 받는다. 회사에서는 비자가 발급되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기로 했다. 정규직이 되면 의료보험에 가입되고, 지난 2015년 김해의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왼손 손가락 4개를 잃은 우주 아빠가 추가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10만원대로 비싸서 맞지 못하는 인슐린 주사를 맞고 당뇨와 고혈압 치료도 받을 수 있다. 우주 엄마도 재외동포(F4)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교육을 받았고, 이달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가족들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웃을 일도 많아졌다. 내년에는 빚을 다 갚고, 우주 할머니의 생일에 맞춰 본국에 다녀오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생활이 힘들고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도와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서 보답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보듬어준 한국에서 우주가 훌륭하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