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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손가락은 ‘완벽한 기술’이 아닌 ‘당신의 생각’을 전한다

등록 2022-03-12 09:59수정 2022-03-13 14:43

[한겨레S] 임현정의 클래식 산책
연주 완벽성과 표현력

“연주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벽 세 시에 나를 깨우더라도 벌떡 일어나서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임현정씨가 악보 없이 열정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모습. 다나기획사 제공
“연주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벽 세 시에 나를 깨우더라도 벌떡 일어나서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임현정씨가 악보 없이 열정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모습. 다나기획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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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 병에 걸리는 것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한다. 때로는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굴욕을 당하고 혼자 고립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굴욕을 당하는 순간 사람들한테 배제되어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닐까.

발표하다가 큰 실수를 하여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외로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결국 사랑받고 싶은 지극히도 당연한 마음인데 그것을 가장 위협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만인 앞에서 평가받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주하다가 중간에 음악을 잊어버려서 곡이 중단될까봐, 혹은 실수할까봐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유명 피아니스트도 수두룩하다. 또 30~40년이 넘도록 같은 레퍼토리만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피아니스트인 나로서는 대단한 이슈이며 연구주제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가 한 곡 있다고 해보자. 그 노래를 부르다가 잊어버릴까봐 두려워서 가사가 적힌 종이를 보면서 노래를 부를 때와 다 외워서 흠뻑 심취되어 노래를 부를 때, 둘 중 어느 때가 감정전달이 잘될까? 가사가 적힌 종이에 의존하며 노래를 하는 것은 다칠 것이 무서워 속도를 내지 않는 자동차 경주와 같고, 거절당할까봐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열심히 준비했다면 ‘긴장감’의 효능을 믿어라

완벽성과 표현력의 관계를 좀 더 탐구해보자. 기술적인 완벽성이란 물론 표현을 전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언어를 마스터하게 되면 더 이상 토씨가 틀릴까, 안 틀릴까 등을 걱정하기보다는 뜻의 전달에 무게를 두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구사한다.

기술적인 완벽성에 너무 집중하게 되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마음껏 표현하는 용기가 두려움으로 교체되고, 음악의 본질을 표현하기보다는 하나의 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우선순위가 된다. 이럴 경우 청중에게는 곡의 본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는 밋밋한 연주가 되거나, 아니면 연주가가 틀릴까봐 되레 청중의 마음이 불안해질 수 있다. 예술이나 사랑 같은 고귀한 가치보다는 그저 두려움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교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런 말을 했다. “작곡가가 절망감으로 절규하고, 사랑이 주는 불같은 고통을 호소할 때 우리는 무슨 상투적인 틀에 따라서 이를 밋밋하게 전달하는 표현밖에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불타오르는 음악의 언어가 나른한 시어(詩語)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변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즐거움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는 그런 예술에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그 예술은 영혼이란 없는 완벽한 레이스에 불과하다. 당신의 손가락에 당신의 생각을 옮기는 임무를 부여하라. 그러면 당신은 그저 실행하는 자에서 해석자로 바뀔 테니까.”

자 그럼, 어떻게 하면 떨리는 마음을 줄이고 공포를 덜 수 있을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가 가지고 있는 팁을 여기서 나누고자 한다.

우선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준비가 잘 안되어서 생기는 ‘두려움’이다. 이런 스트레스는 우리의 부족함을 일깨워서 더욱더 분발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의 답은 하나밖에 없다. 연습, 반복이다. 새벽 세 시에 나를 깨우더라도 벌떡 일어나서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적든 많든, 지인이든 생판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청중 앞에서 많이 연주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한 종류의 스트레스는 ‘긴장감’이다. 아무리 준비가 잘되고 경험이 많아도 사람들 앞에 설 때 긴장감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신체적 기능을 향상시켜준다. 그래서 긴장감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이득이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후에는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하늘에 믿고 맡기는 것이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새옹지마의 철학을 생각하며, 결과가 어떻든지 결국에는 어차피 다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도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응원을 스스로에게 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호로비츠 “난 낭만파 아닌 개성파”

1986년 1월23일,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에서 한 기자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최후의 낭만적인 피아니스트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호로비츠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최후의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개인적이지 표준화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나에게는 나만의 견해가 있지만, 오늘날의 피아니스트들은 비평가들의 의견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죠. 나의 예술적 유산은 19세기에서 전수받은 것입니다.”

같은 기자가 음반산업이 요구하는 완벽함을 강조하자, 호로비츠가 보인 반응은 이랬다. “나는 나의 연주를 매끈하게 손질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실수한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는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은 다 실수를 합니다. 그건 우리가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더듬기도 하지 않습니까. 걸을 때는 넘어지기도 하죠. 한마디로 인간이라는 뜻이지요.”

좀 우스꽝스럽지만 나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던 나의 어머니의 명쾌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15살 때 루앙국립음악원 졸업시험을 앞두고 떨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심사위원들도 우리처럼 화장실 가서 볼일 보는(사실은 더 익살스럽게 표현하셨지만)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괜히 벌벌 떨지 말어라!”

피아니스트, 서울대 산업수학센터(IMDARC) 자문위원. 프랑스 국립음악원 피아노과를 최연소 수석 졸업했으며, 영국의 음반회사 이엠아이(EMI)에서 201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내면서 데뷔했다. 독창적이고 대범한 곡 해석으로 유명하며, 음악에서 자유를 추구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씨.
피아니스트 임현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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