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씨는 15살 어린 나이 때 음악적으로 구속하는 피아노 지도교수와 과감히 결별했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으나, 혼자 연습해 루앙음악원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파리국립음악원에 합격했다. 사진은 피아노 레슨 장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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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스테판 하스켈 감독이 나에 관하여 다큐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다. 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40대에 들이닥친 갑작스러운 전신마비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와 요가 수련, 그리고 명상을 통해서 건강을 다시 완전히 회복한 그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프랑스인에게 큰 영감을 안겨준 바 있다. 그런 그가 나의 이야기를 다큐영화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019년도 가을에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연주회와 학교 강연을 하고 있는 스위스 일상부터 시작된 다큐멘터리 촬영은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지난해 12월 격리를 무릅쓰고 한국에 날아온 하스켈 감독 덕분에 재개되었다. 울산과 대구, 서울, 안양, 안산, 광주, 부천, 고양 등 숨 막히는 촬영 스케줄이었다.
마지막 촬영지는 내가 공부했던 프랑스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프랑스 촬영을 계속 미뤘다. 연주회가 아니라 다큐를 위하여 나의 청소년기 발자취를 다시 밟으러 갈 용기가 도무지 나질 않았다. 클래식의 본토에서 정말 풍부한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매정함과 고독함으로 상처투성이였던 나의 십대를 다시 곱씹어야 하는 것이 힘들어서였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부터 시작된 프랑스 촬영은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많은 스태프들의 협조와 환영을 받았고, 재학생들과 나눈 덕담도 즐거웠다. 학교 교수가 된 나의 동기 친구 바르두히와 뜻밖의 재회로 기쁨이 넘쳐나는 촬영이었다. 그 후 콩피에뉴 음악원에서 은인이자 어머니 같은 아녜스 선생님을 만나 돌아가신 오플레 선생님을 회상하면서 졸업시험 때 연주했던 슈만의 노벨레테 8번을 연주했고, 노르망디 루앙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 옛 시절을 떠올리며 훈훈한 저녁 식사도 하였다.
드디어 루앙국립음악원에 간 날 아침.
웨에에에에에에엥! ALERTE INTRUSION! ALERTE INTRUSION!(침입자 경고! 침입자 경고!)
웨에에에에에에엥! ALERTE INTRUSION! ALERTE INTRUSION! x 100
20년 전 15살의 나를 프랑스에서 추방하려고 했던 교수가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 루앙국립음악원 앞에서 갑자기 들려온 경고음이다. 엄청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기계 음성의 날카로운 경고음이 내가 학교 앞에 한 발자국을 막 딛자마자 울어대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타이밍이 황당했다.
침입자 경고음에 휩싸인 채 음악원에 들어간 나는 20년 전과 똑같이 꽁지 머리를 한 동창생 이브를 우연히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또 연습실을 배정받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번 싸웠던 크리스토프 아저씨도 만났다. 지금은 서로가 너무 반가웠고, 아저씨는 나를 “우리 학교가 배출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고 추켜세우면서 환영해주었다. 그에게 루앙국립음악원 쪽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설마 20년도 넘은 그 옛날에 그 교수님과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는 걸까?”라며 놀라워했다.
20년 전, 루앙국립음악원의 내 피아노 교수님께 리스트 소나타를 연주했던 ‘대사건’이 있었다. 리스트 소나타에 푹 빠진 나는 교수님께 이 곡을 지도해주실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이 곡은 음악적으로나 테크닉적으로 가장 난해한 독주곡이고 길이도 30분이나 되는 대곡이야. 적어도 16살은 되어야지 이 곡을 시작할 수 있어, 넌 이제 겨우 13살이잖아”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난 이 곡을 연주하지 않으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눈만 뜨면 리스트 소나타의 광활하게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성들이 떠올랐고, 이 곡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큰 고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교수실에서 멀리 떨어진 연습실에서 아침저녁으로 몰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비밀 연습을 한 지 2년 뒤 떨리는 마음으로 교수님께 고백했다. “교수님, 저 사실은 혼자 연습했어요, 곡도 다 외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할 수 있습니다.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떳떳하게 나의 사랑하는 리스트 소나타로 교수님을 놀라게 해드릴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연주가 끝나자,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말을 거역했다고 화를 내면서 나를 돌려보냈다. 큰일이었다. 일년 뒤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입시가 다가오는데, 이 교수님과는 도저히 함께 준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스트 소나타에 푹 빠진 나에게
“이건 대곡이니 16살에 쳐” 금지
혼자 익히자 “감히 내 말 거역” 격분
왕따 불구 ‘음악적 자유’ 찾아나서
임현정씨의 2003년 파리국립음악원 합격을 보도한 <파리 노르망디> 신문 지면. 임현정 제공
사실, 자유에 목말라 있던 나는 엄격하게 자신의 명령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교수님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음악적으로 숨 좀 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굳은 결심을 했다. 며칠 뒤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다. “죄송합니다. 저 이제 수업에 그만 나오겠습니다.” 어차피 난 루앙국립음악원을 이미 졸업한 상태였고, 일년 동안 입시만 열심히 준비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있는 대로 화가 난 교수님이 소리를 너무 지르는 바람에 바로 옆 레슨실에 있던 다른 교수님이 놀라서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음날이었다. 한국 영사관의 명예영사님이 급하게 찾아와서는 “현정아, 너희 피아노 교수님이 널 프랑스에서 추방하고 싶다고 나를 찾아오셨다. 도대체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다. 한 나라에서의 추방은 무슨 범죄를 저지르거나 해야 가능하지 않은가! 고작 15살 소녀에게 모든 것을 다 가진 교수가 자신의 영향력을 총동원해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것이다. 그 계획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난 루앙국립음악원의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일년 동안 혼자서 입시 준비를 한 끝에 나는 루앙국립음악원 역사상 최초로 파리국립고등음악원 피아노과에 합격했다.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취재 요청이 와서 교수님께 화해의 의미로 함께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지만,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내가 12살부터 치열하게 공부했던 프랑스. 그곳은 나에게 치열한 싸움의 상징이다. 그리고 침입자 경고음(ALERTE INTRUSION!)은 그 싸움의 본질을 너무나도 잘 보여줬다. 감정이 북받쳤던 루앙을 뒤로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아름다운 뤽상부르 가든을 함께 걸으며 촬영을 마쳤다. 프랑스 촬영팀과의 작별 인사가 가슴이 뭉클하게 아쉬운 것을 보면 그래도 나의 프랑스 친구들은 좋았으며, 삶은 내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피아니스트, 서울대 산업수학센터(IMDARC) 자문위원. 프랑스 국립음악원 피아노과를 최연소 수석 졸업했으며, 영국의 음반회사 이엠아이(EMI)에서 201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내면서 데뷔했다. 독창적이고 대범한 곡 해석으로 유명하며, 음악에서 자유를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