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를 할 때도 영혼과 함께 숨을 쉬며 연주를 하게 되면 음악은 템포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템포를 자유자재로 창조하게 된다. 루바토가 탄생하는 것이다.” 임현정씨가 2016년 프랑스 릴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하고 있는 모습. 다나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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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쯤은 완벽한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뭐든 실수하지 않고 다 잘하는 완벽한 존재 말이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연주를 추구한다. 그 완벽이란 이상을 갖고 예술을 하는 이상 이 주제는 종종 나를 사색에 잠기게 한다. 완벽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우선 근본적 의미를 한번 살펴보자.
완벽(完璧). 完 완전할 완. 璧 둥근 옥 벽. ‘완’은 결함 없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옥벽은 둥글납작하고 중앙에 둥근 구멍이 있는 옥으로 만든 물건이며, 예로부터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따라서 어원을 보면 완벽은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이며,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중국 고대 신석기 시대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옥벽의 하나. 다나기획 제공
‘완벽’을 프랑스어나 영어로 똑같이 ‘Perfection’(페르펙시옹, 퍼펙션)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의 Perficio(페르피키오)까지 올라가게 된다. Perficio의 -ficio는 무엇을 ‘하다’라는 뜻이고, Per-는 ‘끝까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Perfection의 뿌리적인 의미는 ‘끝까지 하다’라고 할 수 있다.
한자어나 라틴어, 즉 뿌리 언어로 본질적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틀리지 않는”, 혹은 “실수 없는” 등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완벽의 ‘벽’이 뜻하는 둥근 옥벽조차 중간에 구멍이 나 있다. 완벽이란 둥글게 꽉 차 있는 구슬과 그 속에 존재하는 텅 빈 ‘공간’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완전’이란 필요한 게 전부 갖춰져 모자람이 없음을 가리키고, 부족한 부분 없이 빠짐없이 갖췄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완벽이란 아름답기만 해서, 부드럽기만 해서, 쉽고 간단하기만 해서, 밝기만 해서, 혹은 강렬하기만 해서 완벽한 것이 아니다. 어둠과 밝음, 음과 양을 다 갖추고 있을 때 완전한 것이며, 그때 비로소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음과 양, 그 극과 극이 모두가 나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자리’를 완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나타내고 표현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바로 우리 마음이다. 마음은 먹는 대로 표현할 수 있고,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겨서 실현해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내일, 아니, 지금 당장이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나오는 무한한 가능성의 자리가 바로 우리 마음이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온전하고도 완전한 ‘완벽’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지금 현재 나에게 완벽이란 피아노 앞에서 쉽게 술술 풀릴 때만 완벽한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오히려 더 승화하는 것을 느낀다. 물론 몇십년간 연습하며 무대에서 수백번 연주한 곡들을 계속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더 쉽고 편안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한번도 연주하지 않은 곡들을 새로 배워가며 나의 부족함을 열렬히 느끼는 것도 공부 과정에 있어서 아찔하지만 가장 짜릿한 일 중 하나다.
요즘 나는 바로 그런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바흐의 평균율 1권과 2권, 48곡의 프렐류드와 48곡의 푸가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중이다. 1권 전곡은 이미 투어를 하며 수차례 완주한 바가 있지만, 2권은 수년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작년에 큰 용기를 내어 시작된 평균율 2권과의 여정 속에서 난 다시 초보자가 됨을 느낀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의 보폭은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지만, 부족함을 연습으로 채워나가며 그래도 어제보다는 승화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때로는 답답한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이 순간 또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생각하며 다시 또 시작한다.
왼쪽, 오른쪽이 완벽하게 대칭하는 인간의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눈썹 높이, 눈 크기와 모양 등 많은 것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인 실험에 의하면 같은 사람의 얼굴을 컴퓨터로 조작하여 양쪽이 정확하게 대칭한 사진과 본래 얼굴의 사진을 보여주면 거의 100퍼센트의 사람들이 본래 얼굴에 더욱 호감이 간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얼굴보다 밸런스는 불완전하지만 자연스러운 얼굴이 더 좋다는 것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규칙적인 리듬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없고 양쪽이 정확하게 대칭하는 나뭇잎이나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자연의 질서에서조차 항상 예외는 존재한다. 심지어 음계의 기준이 되고 있는 평균율조차 완벽하지 않고, 자연 그 자체의 순정률 또한 비규칙적이다. 사람의 들숨 날숨 또한 정확한 리듬으로 쉬어지는 경우는 없다. 오페라 가수들이 노래를 할 때도 높은 음을 부를 때 자연스럽게 숨을 더 크게 쉬게 된다. 그러면서 리듬은 자연스럽게 길어지고 루바토라는 것이 탄생한다. 피아노 연주를 할 때도 영혼과 함께 숨을 쉬며 연주를 하게 되면 음악은 템포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템포를 자유자재로 창조하게 된다. 루바토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은 규칙적인 군대식 음악 소리에 발맞춰서 행진하는 것을 경멸한다. 그것을 즐기는 인간은 뇌를 가질 자격이 없다. 척수만 있으면 그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그럼 딱! 딱! 거리는 메트로놈에 딱 맞춰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은 얼마나 더 경멸할까!
눈을 감고 마음속에서 나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운 연주를 수도 없이 연습한다. 무대에 나가서 두려움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를 할 때, 나의 마음속에서의 연주와는 다르게 표출되기도 한다. 부족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옥벽의 둥근 구멍처럼 나의 인생의 중요한 일부이고, 완벽함을 이루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위, 사회의 틀 안에 정해진 완벽한 기준에 적합한 인간이 존재한다고 한들, 우리에게 결국 가장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내가 사랑에 빠진 대상이다. 불완벽함을 완벽함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고 사랑이야말로 완벽의 원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임현정의 클래식 산책’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