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화성들로 구성된 하모닉스는 음 하나가 진동을 하면서 교감공명이 일어나 자연배음적인 음들이 함께 울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자연배음적 음들이 클래식 음악 작곡법의 기둥 역할을 하는 화성들이라는 사실은 정말 신비롭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씨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 다나기획 제공
피아노는 음악의 도구이고, 음악은 예술의 수단이라고 할 때, 예술은 무엇의 도구라고 할 수 있을까? 강연할 때마다 청중에게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예술은 영혼의 도구입니다.”
“마음의 도구입니다.”
“상상력의 도구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많이 듣는 답변이다.
영혼, 마음, 상상력.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눈으로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며 무게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기준에서도 자유로우며 한계도 없고 제약도 없다. 상상하는 데에는 한계가 없고 마음먹을 수 있는 데에는 끝이 없으며, 영혼 또한 적어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시공간을 초월해 있는 순수한 근본 그 자체이다.
어떠한 것에 감탄하고 감응하여 그것이 깊은 울림으로까지 이어지게 될 때 우리는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감동을 하는 순간 시공간을 잊게 되고 심지어 몸의 고통까지 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저명한 의학 저널인 <랜싯>에서 음악이 신체적 고통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 자료를 발표한 적이 있다. ‘성인의 수술 뒤 회복 치료제로서의 음악’(Music as an aid for postoperative recovery in adul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이란 연구에 따르면, 수술 전, 수술 중 또는 수술 후에 음악을 들으면 환자의 불안과 통증이 줄어들며 회복이 더 쉬워진다는 것이 발견됐다. 총 7000명을 대상으로 72개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이 실험에서 음악과 함께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불안증이 덜하고 수술 후 통증도 더 적으며 진통제 또한 덜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또한 전반적으로 수술의 결과에 관하여 더 만족했는데, 음악의 효과는 전신마취에서도 나타났으나 수술 중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그 효과는 더욱더 크게 나타났다.
이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적인 ‘이쁘다’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소름이 끼칠 정도의 진동이 일어나서 신체적 고통도 잊게 하고 시공간의 개념 또한 잊게 되는 ‘근본적인 아름다움’이다. ‘근본적인 아름다움’의 특징은 그것을 경험한 전과 후에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인데, 깊은 감동에서 비롯한 심적인 승화가 일어나서 존재 어딘가가 성장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은 그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참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는 음들이 서로 공명하면서 아름다운 화성을 이룬다. 이러한 화성을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연 자체에 존재한다는 점이 더 놀랍다. 사진은 지난여름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의 음악분수대에서 음악에 맞춰 물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음이 진동할 때 생기는 교감공명은
완벽한 화성 이룬 ‘하모닉스’의 전형
“아름다운 음악은 자연서 발견된 것”
하모닉스 현상만 보아도 그 근본적인 아름다움이 순수한 자연의 소리에 담겨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모닉스란 한 사운드에 본연적으로 담겨 있는 음들을 이야기한다. 완벽한 화성들로 구성된 하모닉스는 음 하나가 진동을 하면서 ‘교감공명’(어떤 음의 진동 에너지를 다른 것이 흡수하여 함께 울리는 현상)이 일어나 자연배음적인 음들이 함께 울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자연배음적 음들이 클래식 음악 작곡법의 기둥 역할을 하는 화성들이라는 사실은 정말 신비롭다. 즉, 1도, 3도, 5도, 7도와 9도의 화성들이 (도를 기준으로 도-미-솔-시-레) 자연의 음 그 자체에서 근본적으로 울린다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민족의 음악 중 이 화성들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는 없다. 긴 역사를 통하여 소리의 과학과 음의 움직임, 즉 화성학을 가장 난해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클래식 음악조차 자연 그 자체에서 울리는 원천적 교감공명이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화성들로 인하여 클래식 음악의 역사가 형성되었다. 경이로운 점은 이 아름다운 음악들의 시작이 인위적인 창조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주에 이미 존재하고 자연 속에 떠다니고 있는 아름다움의 ‘발견’에서 비롯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모닉스의 존재가 그토록 신비로운 이유는 자연 그 자체에서 퍼져 나오는 교감진동 음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왜 굳이 아름다워야 하지? 자연의 원천적이고 근본적이며 원초적인 음들이 괴성 같을 수 있고 비화성적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굳이 천상의 하모니 같은 1, 3, 5, 7, 9도로 울리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신기하다. 특히 이 아름다움이 환경이나 교육으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자연의 근본적인 형태 그 자체에서 비롯됐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신기한 경험을 나도 직접 한 적이 있다. 지난해 3월 어느 날 잠시 낮잠을 자고 있던 중 거센 바람 소리에 깨어나게 되었다. 내 방의 창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살짝 열려 있었고 맞은편에 있던 미닫이문도 살짝 열려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바람 소리가 기괴하게 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천상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귀를 계속 의심하면서 말초신경까지 동원하여 도대체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소리와 정확히 3도의 화음을 이루는 다른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경악할 틈도 없이 바로 연이어 또 다른 천상의 소리 같은 음이 이제 5도의 화음을 이루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시공간을 초월하여 심신이 마비 상태가 된 채로 그렇게 넋을 놓고 듣고 또 들었다. 이 기가 막힌 조화로움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견디기 힘든 황홀함에 나는 눈을 떴고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창문과 미닫이문이 열린 틈의 각도들이 우연의 일치로 완벽한 황금비율이 되어 이런 천상의 소리를 낸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공기와 공간, 그리고 바람의 에너지가 합작하여 자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며 본연의 성스러움을 보여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이 그려지듯 침묵 속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은 인종, 국경, 문화, 종교, 전통, 성별, 나이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함께 감동하고 공감하게 하는 순수 언어다. 그 아름다운 울림 안에서 우리는 그 수많은 레이어를 벗어내고 존재 그 자체의 근본적인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찰나가 영원이 되면서 우리의 본질이 얼마나 숭고하고 존귀한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서울대 산업수학센터(IMDARC) 자문위원. 프랑스 국립음악원 피아노과를 최연소 수석 졸업했으며, 영국의 음반회사 이엠아이(EMI)에서 201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내면서 데뷔했다. 독창적이고 대범한 곡 해석으로 유명하며, 음악에서 자유를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