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한 게 그이였을까 차이밍량이었을까
난 영화 속 나의 연인을 찾기가 힘들다. 이유는 영화 속에서 마음을 흔드는 남자를 보게 되더라도 영화가 끝나면 ‘그 배우가 멋지게 연기 했구나’ 또는 ‘작가나 감독이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님을 빠르게 자각하는 허무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남자가 누군가의 상상력이란 생각이 들 땐 그에 대한 나의 설렘도 이내 막을 내린다.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그림의 떡) 사람은 좋아 할 수 없는 현실파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영화 속 인물보다는 못하더라도 나의 눈높이를 가능한 남자에게 맞추고 그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한마디로 현실 가능한 남자인 것이다. 그런 내게도 머릿 속에 지워지지 않는 영화 속 얼굴이 있다. 작은 욕조 안에서 옷을 벗고 어깨를 움츠리고 미간을 슬며시 찡그리며 건조한 표정을 짓던 사람. 작년 가을 부산영화제에 갔다가 남편의 권유로 보게 된 영화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만의 외롭고 고독한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사실 내가 열광한 인물은 내 눈 앞에 펼쳐진 영화 너머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차이밍량일 수도 있겠다. 나를 두 손 들게 한 그의 영화 <흔들리는 구름>을 강렬한 느낌으로 보았고 작년엔 그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난 가끔 그 엽기적이며 기괴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배우 이강생과 차이밍량을 생각했다. 시작은 주인공인 남자포르노 배우가 일본인 여자 포르노 배우와 수박으로 포르노를 찍는 장면이었다. 수박을 손가락으로 찔러 철퍽거리는 소리를 내는 장면에 나와 남편은 킥킥거리며 웃고 말았다. 연일 방송되는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의 경고… 남자는 건물 물탱크에서 샤워를 하고 여자는 자신이 다니는 박물관 화장실에서 물을 훔쳐낸다. 물에 대한 갈증은 사람들의 내적 결핍을 형상화한다. 낡은 타일 바닥을 타닥거리며 걷는 그녀의 무기력해진 슬리퍼 소리는 마음을 조인다. 아파트 건물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숫자들은 우리가 도시 속 커다란 수용소 속에 살고 있음을 연상하게도 한다. 형광등 아래 비추는 창백한 푸른빛… 좁은 목욕탕에서 샤워기 대신 플라스틱 병에 구멍을 뚫고 세상에 오염된 듯한 더러운 물을 뿌리며 권태롭고 힘겹게 섹스하는 배우의 몸짓은 처참하리만큼 스산하다.
장차현실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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