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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크린 속 나의 연인 -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록 2005-12-28 17:43수정 2006-03-23 15:58

그 대책없는 약자의 선량함이라니
물론 내 이상형은 키 크고 잘생긴 남자다. 카리스마가 있거나 우울한 불량기가 느껴지는 얼굴보다는 선한 인상의 남자가 좋다. 그리고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매너도 좋고, 사리에도 밝아서 언제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는 법이 없는 남자보다는 저런 대책 없는 순수함으로 어떻게 나랑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을까 싶을 만큼 약간은 몽상적인 남자가 좋다. 그렇다고 바보처럼 헤헤거리며 누구나 이용해먹고 싶어지는 그런 남자는 아니었으면 싶고, 살짝 만화 주인공 같은 순수함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좋다. 예를 들자면 금성무 같은 타입. <중경삼림>에 나오는 금성무든 <첫사랑>에 나오는 금성무든, 그를 보고 있자면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막상 현실에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로 방황하거나 또는 행복해하는 그를 보자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제 아무리 세게 실연을 당한다 한들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몇 개 먹고 나면 다 잊을 것 같은 안도감을(중경삼림), 그는 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그를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설렘이 없다. 보면 흐뭇하고, 상상만 해도 행복한데 마음이 떨리지는 않는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잘 키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예뻐 죽겠기는 한데, 그 존재가 안타까워서 마음 저린 느낌 같은 건 없다.

내게 마음 저린 느낌을 주었던 배우는 금성무와도 정반대고 내 취향도 아니다. 나는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는 코만 크고 안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건 만화처럼 순수해서 누구도 훼손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인데, 이 사람은 너무 바보 같아서 누구든 이용해먹고 싶어지는 타입이다. 통조림 따위 먹지 않고 해결될 실연도 이 남자 앞에서는 전 생을 걸어야 하는 비장함이 되고 만다. 너무 안 생겨서 그런가. 그렇게 비장한 사랑 고백도 겨우 생의 마지막 순간(시라노)이나 이별의 순간에서야(그린카드) 할 수 있을 뿐이다. 고백을 해봐야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위의 해피엔딩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매사 불쌍함으로 일관하니, 혹 그에 대한 내 감정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닐까. 그렇다면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그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뭉근하게 저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시 낡고,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것들에게 반사적으로 느끼는 태생적인 연대감 비슷한 것은 아닐까.

한지혜 소설가
한지혜 소설가
그는 실제로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단다. 탈선이란 탈선은 다 저지르는 문제아를 위한 대비책으로 권유받은 연극을 통해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프로필은 나중에 알았지만, 태생이 그래서 그런지 그의 눈빛에는 어떤 우수가 있다. 그를 보면 평생을 걸고 싶은 꿈이 있고, 그 꿈은 이루지 못하기가 더 쉽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고,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고, 그래서 애달프고, 그래서 간절한 어떤 열망이 느껴진다. 그것은 조금만 더 비약하면 내 모습이 되고, 조금 더 정신 차리고 보면 내가 반드시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이 된다. 동시에 참 많이 좋아했지만 가난해서 혹은 그 삶이 너무 불안해보여서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래서 오래오래 미안함으로 남기고 만 누군가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픈 마음으로 손을 내밀면 그는 오히려 가만히 나를 안고 내 고단한 삶을 위로해줄 것 같다. 내 욕심 찾아 살겠다는데, 비난하는 대신 어깨 두드리며 격려해주고 그림처럼 묵묵히 바라봐주기까지 하는, 그에 대해 내가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지만, 내가 힘들거나 심심할 때는 아무 때고 뒤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서 넉넉하게 웃고 있는 선하고 따뜻하고 마음 약한 남자... 그만하면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의 판타지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지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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