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 주연 이서진 / 정용일 기자
드라마 ‘이산’ 주연 이서진
“아프냐, 나도 아프다.” 2003년 <다모>에서 이서진은 이 대사 하나로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1999년 <파도 위의 집>으로 데뷔해 <별을 쏘다> <불새> <프리즈> <연인>에서 아픈 상처를 감춘 거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온 그는 세련된 외모와 강단 있는 중저음의 말투로 시청자들의 연인이 된 지 오래다. 문화방송 <이산>에서 권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왕이 되어야 하는 이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그를 11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 <이산> 속 이서진=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산>은 정조의 업적보다는 이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작품이다. <이산>의 타이틀 롤을 맡은 이서진은 매회 그를 죽이려는 정순왕후(김여진)의 세력에 맞서 역경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상적 리더에 대한 갈망으로 정조가 대중문화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 그가 분한 이산이 말하는 성군의 덕목들이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한다. “정치란 뭐고, 백성이 어쩌고 하는 대사들을 보면 모두 성군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잖아요. 현실에서 이런 기본을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일깨우려는 의도가 작품에 담긴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그가 생각하는 정조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얘기했다. “정조는 정치적·학문적으로 업적을 남긴 훌륭한 인물임에도 세종대왕만큼 평가를 못 받은 인물이에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끊임없이 모함을 받으면서도 왕이 돼 태평성대를 이뤘으나 일찍 죽는 비운의 왕이죠.” 비슷한 시기에 정조를 다룬 <한성별곡-정> <8일>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다른 배우들(안내상, 김상중)과의 비교가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드라마마다 정조를 보는 시각과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연기도 극마다 다르기 마련”이라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 <이산> 밖 이서진= 젊은 연기자들 중에 현대극도 하면서 사극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의 하나인 이서진은 유독 사극에서 빛이 났다. <다모>가 그를 발견한 작품이라면 <이산>은 그의 8년간의 연기생활에서 방점이 될 작품일 듯하다. “사극은 현대극에서 보여줄 수 없는 깊이가 매력이 있어요. 소재가 무궁무진한 데다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다루니까 하면서도 재밌죠.” 그는 사극의 대가라고 불리는 이병훈 피디의 제안을 세 번이나 뿌리친 ‘대담한’ 전력도 갖고 있다. “<상도> <대장금> <서동요>를 할 때마다 불러주셨는데 번번이 다른 작품 때문에 하지를 못했어요. 사극이 안 어울릴 거라는 얘기가 나오던 <다모>를 하기 전부터 이 피디님은 제게 사극을 제의해주셨던 분인데 이제야 하게 됐죠.” <이산>은 동시간대 방영하는 <왕과 나>와의 경쟁에서 15회부터 시청률 뒤집기에 성공했다. 잘못된 캐스팅이라는 논란에 시달렸던 <왕과 나>에 비해 안정적인 성인 연기가 받쳐준 덕이다. 이서진도 연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모>의 ‘다모’는 내가 아닌데 <이산>의 이산은 나니까 어깨가 무겁잖아요(웃음). 늘 연기를 하면서 무엇을 더 보여주나 고민하는데 달라졌다는 말을 들으면 그 힘으로 또 작품을 하게 돼요. 이번 드라마를 끝내고 나면 더 성숙해져 있겠죠.” 그가 배우로 데뷔한 뒤로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여러 가지다. 비열한 악역(<별을 쏘다>), 뱀파이어(<프리즈>), 깡패(<연인>), 악에 받친 고아(<불새>) 등 강한 연기만 했는데도 그에겐 늘 ‘부드러운 남자’라는 꾸밈말이 따라온다. “거친 역할만 했는데 왜 부드럽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연출자들도 제가 강해 보여서 캐스팅한다고 하거든요. 아마도 평소에 제가 잘 웃고 보조개가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요.” 금융가 집안 출신이란 배경 뒤에 따라오는 말들엔 볼멘소리가 돌아온다. “돈으로 <다모> 폐인들을 끌어 모으고, 제작비를 댄 것도 아닌데 ‘돈으로 잘됐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상하죠.”
배우 외엔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산>에서 만난 이순재씨를 보며 배우의 수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모델을 찾았다. “일흔이 넘어서도 연기를 하시는 선생님을 보면 연기가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에 맞는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내 밥그릇은 있을 것 같아요.”
김미영 남지은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산’ 주연 이서진 /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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