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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핏줄의 민족’ 버리고 ‘주체적 우리’ 고민할 때

등록 2007-12-21 17:51수정 2007-12-21 19:20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가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함께 연 ‘이주노조 표적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 현장. 김상봉 교수는 ‘나’는 민족의 범주 속에서 참된 의미의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한다면서,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강조했다.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가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함께 연 ‘이주노조 표적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 현장. 김상봉 교수는 ‘나’는 민족의 범주 속에서 참된 의미의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한다면서,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강조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우리시대 지식논쟁 /

7. ‘민족’ 해체는 절박한 과제

이번 주로 모두 일곱 차례에 걸친 ‘민족주의 논쟁’을 마무리한다. 1, 5회의 안병욱 교수를 비롯해 박노자·임지현·김동춘·권혁범·김상봉 교수 등 모두 여섯 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가운데 안병욱 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민족주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면서 계급연대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박노자·임지현·권혁범 교수는 탈민족주의 시각을 폈다. 박 교수는 민족주의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뒀다. 임 교수는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이나 평등 등 보편가치가 종속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중도 시각의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민족현실론’을 폈다.

마지막 논자인 김상봉 교수는 서양 이론에 기댄 소모적 논쟁보다는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족 해체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 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해가야 한다고 했다. 다음 주제는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민족주의가 ‘집단적 자기’에 대한 집착이라면,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것은 지금 한국에서 절박한 실천적 과제다. 아집이 어리석은 것은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집이란 자기동일성에 대한 집착인데, 살아 있는 어떤 것도 순수한 자기동일성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동일성이란 플라스틱처럼 죽은 사물의 특징인 것이다. 하물며 개인도 아닌 집단인 민족을 두고 고정된 동일성을 몽상하는 것은 계몽된 시대에 어울리는 자기인식이라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민족의 구분기준은 너무도 야만적이다. 현행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민족을 “씨족이나 종족, 부족 등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공통의 조상을 가진 한 핏줄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정의한 뒤에 너무 자연스럽게도 민족을 “하나의 큰 가족”이라고 이르고 있다.(도덕 II, 156) 민족을 가족과 같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맞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민족이 핏줄로 규정되는 나라에서 민족 구성원들에게는 맹목적 충성이 강요되는 반면, 조금이라도 핏줄이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세계화된 시대에 정말 심각한 질병이다.

한편에서는 차라리 감옥에 갈지언정 군대 가서 총을 들 수 없다는 젊은이들은 핏줄이 같다 해서 군대에 끌려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면서 이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다. 새로 결혼하는 일곱, 여덟 쌍 중의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는 나라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핏줄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이 사회의 주류에게 까닭 없이 배제되고 차별받은 소수자들의 좌절과 증오가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핏줄’ 로 규정되는 민족주의는 주체성 억압·타자와 소통 방해
“민족이 세계화의 대안” 주장은 질병으로 다른 질병 고치는 격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까닭은 민족주의 없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실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우리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조국은 언제나 민족을 팔아 충성을 강요한다. 그렇게 홀로주체로서 군림하는 조국과 민족 아래에서 개인은 주체성을 빼앗기고 전체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런즉 민족주의는 개인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타자와의 참된 만남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타파해야 할 이데올로기이다. 더러는 계급이 민족과 만나야 강해진다거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그나마 민족주의가 자기를 지키는 방파제가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질병을 다른 질병을 통해 고치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사회의 도를 넘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이제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로까지 타락한 상태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히 국가주의에 저항하고 민족주의를 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족주의를 비판할 뿐 그것의 존재 근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질병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 민족은 실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주체성은 자기인식에 존립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스스로 욕구할 줄 모르면서 주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꿈과 동경 속에서 이상적 자기를 욕구하는데, 안정된 자기인식은 기억 속의 자기와 동경 속의 자기가 조화를 이룰 때 형성된다.

이 기억과 동경의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자기인식은 필연성과 자유라는 두 계기 사이에서 생성된다. 필연성은 고정성으로서 이를 통해 나의 존재는 안정성을 얻는다. 반면 자유는 유동성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나는 노예 상태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자유로운 필연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긴장 속에서만 자기를 주체로서 인식하고 실현하게 된다. 고정되어 주어진 나의 존재로부터 자유롭게 나를 형성할 때 비로소 나는 자기를 온전한 주체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주체들의 공동체가 나라
민족이란 그런 나라 이루는 집단
국가 비판하며
능동적으로 형성할 ‘우리는 누구인가’ 묻고 모색해야

그런데 나의 주체성은 결코 고립된 홀로주체성일 수 없다. 나의 기억과 동경은 언제나 너의 기억 및 동경과 맞물려 있다. 그런즉 나는 오직 너와 더불어 우리가 될 때, 참된 주체가 된다. 이것이 서로주체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체성의 현실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연성과 자유가 같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가족은 필연적 공동체일 뿐 자유의 현실태는 아니다. 반면 정당이나 기업 같은 사회적 결사체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이지만 필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는 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가족 속에서는 자유의 결여 때문에, 그리고 계급 속에서는 필연성의 결여 때문에 참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필연성과 고정성을 가지면서도 자유의 현실태인 공동체가 바로 나라다. 나라는 내가 그 속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이미 주어진 나의 과거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의 현실태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나라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강렬하게 확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족이란 그런 나라를 이루는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 한에서 민족이란 인종처럼 생물학적인 범주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범주로서, 그 속에서 나는 참된 의미의 주체 곧 시민적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계급적 연대나 다른 탈민족적인 만남 속에서 해체하자는 제안은 세계시민적 주체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제안이지만, 민족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이런 제안은 온전한 나라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방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국가기구와 법률을 결국은 악한들의 손에 내맡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라를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 우리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김상봉 교수 / 전남대
김상봉 교수 / 전남대
하지만 그런 나라를 같이 만들어야 할 서로주체인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수백년 동안 이 땅에 살아왔지만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을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과 새로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과 이 땅에 살다가 다른 나라로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우리로 불러모을 수 있는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민족의 문제는 오직 이 물음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을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개방적으로 해석하는 박노자의 상상력과 고체화된 민족과 국가를 비판하는 권혁범의 이성과 온전한 나라를 형성하려는 김동춘의 열정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런즉 지금은 민족주의에 대한 서양 이론의 한 끄트머리씩을 붙잡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1958년생으로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들어 전 사회적인 반학벌 운동을 전개했으며 현재는 5·18에 대한 철학적 해석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 저서로는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덕교육의 파시즘> <학벌사회> <나르시스의 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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