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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자동차는 ‘뻐꾸기 새끼’/우석훈

등록 2006-04-20 21:30수정 2006-04-21 14:12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한해 출산 자녀 50만·국내 판매 자동차 60만
육아비보다 자동차 구매유지비 더 커
순수 생태계라면 사람의 아이 50년 안에 멸종
종달새 아빠들, 자기 새끼를 더 챙기시지
여기는 명랑국토부

자동차가 늘기는 너무 많이 늘었지만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자동차의 증가세가 멈추지는 않을 전망이다. 수 년 전에 통계적으로는 1가구 1자동차 시대를 돌파했지만, 19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것처럼 소위 ‘세컨 카 임팩트’라고 부르는 부인용 자동차 충격이 한 번 더 있을 예정이니까 당분간도 자동차의 증가세를 제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통 여성이론에서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두 개의 에너지 충격을 이야기하는데, 첫 번째가 ‘부인용 자동차’라는 충격이고, 두 번째가 ‘디시 워셔 임팩트’라고 부르는 식기세척기의 보급에 의한 에너지 충격을 얘기한다. 이 두 가지 다 단순하게 에너지와 생태적 조건에서만 얘기할 것은 아니라 조금 더 복잡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자동차에 대해서 너무 관대한 사회라는 데에 약간의 어려움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대충 보면 우리나라에는 연간 50만명이 태어나고 자동차는 300만대가 조금 넘게 ‘태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차들은 수출이 되어서 우리나라 생태계 밖으로 빠져나가고, 국내 경기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60만대 정도가 우리나라에서 판매된다. 사람과 자동차라는 약간은 특별한 ‘종’을 비교하면 사람이 태어나는 것보다는 자동차가 더 많이 태어나고, 특히 국내 생태계에서 아이들과 자동차는 비슷한 숫자만큼 새롭게 생겨나는 셈인데, 사람이 자동차보다 평균수명이 훨씬 길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사람이 이 생태계에 자동차보다 우점종일 것은 확실하기는 하다.

이걸 일종의 생태계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한 부모에게 아이와 자동차라는 두 개의 아이가 5:6이라는 비율로, 그러니까 거의 동등하게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 이 경우에 아이들과 자동차는 당연히 같은 부모의 젖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에 해당하는데, 이 경쟁관계만 놓고 보면 아이들이 자동차를 밀어낼 수 있는 메카니즘보다는 자동차들이 아이들을 밀어내는 메카니즘이 훨씬 강하다.

일단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80% 정도를 자동차가 발생시키는데, 미세먼지는 천식과 폐렴을 통해서 확실히 유아들의 사망율을 높일 수 있고, 게다가 도시에 사는 돈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아니라 자동차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게 도시의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교묘한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증가하는 디젤을 사용하는 경유차의 경우는 탈황 가솔린에 비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경쟁자인 아이들을 ‘의미 있는 비율’로 제거할 수 있다. 생태계의 비유로 따지자면 종달새 둥지에 들어간 뻐꾸기와 비슷하다. 어미의 알을 밀어낸 뻐꾸기 새끼는 어미의 먹이를 독차지하고 자라난 다음에 어른 뻐꾸기가 된다. 아이를 급성천식으로 잃은 도시의 어느 아버지가 정신적 충격을 이기기 위해서 더 좋은 자동차를 사고 싶어 하고, 자동차를 꾸미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쓴다면 전형적인 뻐꾸기 효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적인 뻐꾸기 효과는 정치인들과 지역토호들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진행된다. 결국 아이들과 자동차가 우리나라라는 생태계에서 서로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셈인데, 새로 생겨난 아이들을 위해서 증가하는 학교나 도서관 같은 정책과 통계를 보면 계속해서 작은 학교들을 없애거나 도서관 예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대신에 도로에 관한 예산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중앙정부에서만 10조원 가량의 예산이 해마다 사용되고, 지방정부로 내려갈수록 순수 예산의 50% 이상을 자동차를 위한 도로건설에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를 위해서는 몇 조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지자체 중에서 육아를 위한 지원금이 100억원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토호가 장악한 지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 지방예산 중에서 도로 비율이 50%를 넘는지를 보면 간단하다. 대개는 ‘맹지’로 분류되어 도로에 접하지 않은 땅을 수십만 평씩 구매한 다음에 도로를 지나가게 하고 골프장과 같은 개발지로 전용하면서 천 억원 대의 돈을 한꺼번에 남기는 토호들이 사는 지자체일수록 아이들을 위해서 순수하게 사용되는 금액은 보기에 민망할 수준이다.

이 사정은 중앙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2004년 총선공약을 지금 비교해보면 실제로 공약대로 집행된 것은 도로건설밖에 없는데, 그야말로 ‘열린 도로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로건설 공약 한 두개씩 제시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없을 정도이다.


자동차와 사람의 아이들이 부모들이 지출할 돈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현재 상황으로는 사람의 아이들이 턱없이 불리하게 되어 있는데, 간단한 생태계 모델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까 순수 생태계라면 이 조건에서 사람의 아이들은 빠르면 20년 길면 50년 내에 멸종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제대로 추정하기 어려운 대기오염에 따른 보건효과를 집어넣으면 아이들의 멸종은 더 빨라진다. 도대체 부모들이 내는 세금은 다 어디 가고 없다는 거야? 중앙예산 중 10조는 새로운 도로를 위해서 그리고 지방예산의 절반 이상이 도로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런 데도 아이들을 위해서 새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남아 있다면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통일을 대비해서 새롭게 만든다고 하는 도로계획까지 집어넣고 한반도에서 사람의 아이들이 언제 멸종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볼까 하다가 너무 참혹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차마 접었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시설이나 지원을 위해서 너무 ‘예산대비 효과’를 따지는 반면에 도로를 새로 만드는 데에는 너무 관대하다. 자동차만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게 될 것인데, 가장 간단한 생태계 모델을 자동차와 사람의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면 꼭 자기 알을 밀어내고 자리한 뻐꾸기에게 온갖 정성을 들이는 종달새와 현 상황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만약 지금의 아이라면 많이 화날 것 같기는 하다. 지방선거에서 저마다 제출하는 공약을 놓고 다시 한 번 계산을 해보면 좀 나아질까? 별로 그래보이지는 않는다. 종달새 아빠들이여, 뻐꾸기의 공격으로부터 종달새 알을 좀 챙기시라.

지난호로 끝맺은 작가 최성각님의 ‘녹색에세이/ 달려라 냇물아’에 이어 이번 호부터는 ‘여기는 명랑국토부’라는 면 제목 아래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의 글을 격주로 싣습니다. 우 실장은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생태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음식국부론>(생각의 나무), <아픈 아이들의 세대>(뿌리와 이파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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