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새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티에리 프레모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칸에 모인 세계 영화인들이 한국 참가자들만 보면 부산영화제의 사정을 물어본다고 한다. 최근 허문영 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이사장의 잇단 사임으로 부산영화제가 내홍에 휩싸이자, 국외로까지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허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 <버라이어티>도 허 집행위원장의 사임 소식을 상세히 보도했다.
부산영화제의 내부 갈등은 지난 9일 조종국 신임 운영위원장 위촉, 11일 허 집행위원장 사의 표명, 15일 이 이사장 사임 발표 등으로 이어지면서 드러났다. 부산영화문화네트워크·부산독립영화협회·부산영화평론가협회·부산영화학과교수협의회 등 지역 영화인들은 “조 운영위원장 인사철회와 이 이사장 즉각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여성영화인모임 등 전국 단위의 영화인 단체도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들의 비판은 영화제 내부 권력 갈등이 아니라 이 이사장의 ‘전횡’에 무게가 실려있다. <다이빙 벨> 외압 사태 등 예외적인 상황이었을 때만 존재하던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이 이사장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부산영화제 관계자는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이 이사장의 독단적 결정에 가깝다”며 “공동집행위원장에서 운영위원장으로 명칭을 바꾼 것도 9일 임시총회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영화학과교수협의회는 “ 임시총회 소집, 참석 인원, 의결 내용 및 일시·장소, 운영위원회 신설과 관련한 정관 개정 및 결과를 포함하여 조 운영위원장 선임 과정과 절차를 상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조 운영위원장은 이 이사장이 <다이빙 벨> 사태로 부산시 감사를 받고 횡령 혐의로 재판받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섰던 영화인이다. 이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운영위원장을 맡은 탓에 ‘영화제의 사유화’라는 강도높은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영화제 운영에 가장 중요한 예산집행 권한이 기존 집행위원장에서 운영위원장에게 이관된다. 사실상 프로그래머 역할만 하게 되는 현 집행위원장으로서는 모욕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역할 분담인 셈이다.
이 이사장은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이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 역시 외부 비판을 덮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여성영화인모임 입장문)이라며 ‘즉각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허 집행위원장의 사표가 수리된 뒤 선임될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이 이사장의 측근인사 이름이 이미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절차적 문제를 들어 조 운영위원장 인사철회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는 “부산영화제는 외압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도 어렵게 지켜온 한국영화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실무진들이 있어서 5개월 뒤 영화제 개최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명분과 원칙이 버려지면서 영화제만 제대로 진행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24일 부산영화제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2014년 이래로 <다이빙 벨> 상영 금지 외압, 영화제 개최와 보이콧을 두고 벌어진 심각한 내부 갈등, 코로나 대유행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운 파행의 시간을 지나 지난해 비로소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부산영화제가 새로운 도약을 할지, ‘고인물’에 갇혀 성장을 멈출지 이사회는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전세계 영화계가 이번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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