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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어떤 메모] 피플

등록 2017-06-16 20:31수정 2017-06-16 20:55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민음사, 2015

“젊었을 때 사람은 인간보다는 풍경에 집착한다. 후자는 해석되는 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카뮈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말은 아주 좋아한다. 인간이란 ‘모를 존재’다. 그래서 ‘지식인’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자연보다는 알 수 없는 존재-사람-에 집착해야 한다. 자유보다 집착, 이것이 지식인의 조건이다.

사람을 파악하는 일도 어려운데,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교직, 의료, 사법 종사자…)이 특별한 이유다. 특히 검사는 다른 직종과 달리 죄와 벌, 형(刑)을 다룬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상담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변호사는 어떻게 구하나요?”다. “당신은 피해자고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검사가 우리 변호사예요, 변호사는 가해자가 구하는 거예요.” 이토록 상식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나는 절망한다.

티브이(TV) 시사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는 검사의 취조 방식에 대해 이런 말들이 오간다. ‘정확히 피의자를 찌르되, 몸속에 칼을 넣고 비틀면 안 된다.’ 수사만 하면 되지, 불필요한 모욕을 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모욕 주기는 권력 남용을 넘어 인간성 타락이다. 선(線)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병우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한 행위가 대표적이다. 우병우씨는 반드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혐오와 수치심>의 저자 마사 너스바움은 당대 가장 뛰어난 자유주의 철학자다. 특히 법학이 얼마나 다(多)학제적 관점을 필요로 하는지를 그처럼 논증한 학자도 드물 것이다. 그녀가 다루는 영역은 윤리학, 정치철학, 문학, 신학, 연극학 등 거론하기 벅찰 정도다. 나는 그녀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불문법(不文法)의 나라이기 때문에 관습과 판례가 중요하다. 법 운용에 있어서 사회문화적 영향이 성문법 사회보다 클 수밖에 없다. 판례와 명문장(판결문)이 그득한데다 글은 쉽고 설득력 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멋진 인용구가 즐비해서 725쪽이 부담스럽지 않다(번역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문학이다!

책의 주제는, 인간의 감정이 형법의 개념과 운용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가이다. 저자는 ‘마이너리티’의 입장에서 혐오(disgust)와 수치심(shame)의 의미 변화를 위해, 최대한 도전하고 최선을 다해 기존 개념을 내파시킨다. 감정은 근대 이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으로, 이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감정은 인식, 사유와 판단의 전제다. 저자는 감정이 정치의 최종 심급임을 잘 알고 있다.

형법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질서다. 그러나 ‘예/아니요’로 판단하기에는 삶은 너무 복잡하다. 개인의 의지, 선택, 동의 등 자유주의의 개념으로는 인간 행동을 제대로 재량(裁量)할 수 없다. 판단해야 하지만, 판단의 근거(자유주의)는 너무 느슨하다. 간극을 매우는 것은 법 운용자들의 고뇌일 수밖에 없다. 추천사를 빌리면,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김영란 전 대법관), “감정의 민주화”(조국 교수)다.

나는 ‘엉뚱한’ 부분에서 감동받았다. 미국의 검찰 표기다. 우리의 영문 표기는 ‘Prosecution Service’. 물론 미국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판례를 표기할 때인데, 검찰이 로건이라는 사람을 고소할 경우 ‘People vs Logan’이라고 쓴다.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의 검사는 선출직으로 민중, 유권자(people)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은 개혁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검찰 스스로 민중을 대신한다는 각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아닐까.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사족: 지난주 예고(<남자 마음 설명서>에 대한 세 번째 글)대로 탁현민씨 책을 다루지 못했음을 사과드린다. 혹 이유가 궁금한 독자라면,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데드 링거>(1988)나 시중의 좀비 영화를 보기 바란다. 나는 문해력이 없는 이들과 ‘17 대 1’로 싸울 수 없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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