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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희진의 어떤 메모] 소크라테스

등록 2017-05-05 20:58수정 2017-05-07 13:25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The Gay 100 1·2’ 폴 러셀 지음, 이현숙 옮김, (주)사회평론, 1996
소크라테스, 월트 휘트먼, 버지니아 울프, 알렉산더 대왕,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윌리엄 셰익스피어, 차이콥스키, 앙드레 지드, 마르셀 프루스트, 앤디 워홀, 루스 베네딕트, 바이런, 엘리너 루스벨트, 테네시 윌리엄스, 나이팅게일, 미시마 유키오, 록 허드슨, 프랜시스 베이컨, 프레디 머큐리, 마돈나….

이들은 미국의 작가 폴 러셀의 저서 ‘The Gay 100’(전 2권)에 등장하는 “역사상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 100명” 중 일부이다. 각각 50명씩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고 우리말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썼다. ‘영향력 있는 동성애자’는 지은이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기술 순서나 선정 기준은 일정하지 않다.

이성애자는 누구인가? 역사는 그들에 대해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를 나열하는 것은 비윤리적이지만, 이들의 존재를 가시화한 저자의 작업은 의미가 있다. 소크라테스 시대와 1900년대 자본주의 초기 동성애의 사회적 맥락은 당연히, 전혀 다른 역사다. 각자 정체성도 다르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두 이성애 제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동성애에 대한 그 어떤 발상도 이항 대립적 사고가 만들어낸 폭력이다. 이성애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강제적 제도다. 성애, 출산, 가족… 이를 둘러싼 그 어떤 인간관계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인간(人/間)은 제도의 산물이다. 문제는 성적(性的)인 행위라고 간주되는 인간 행동일수록 성문화(成文化)된 규범이 약하기 때문에 ‘올바른’ 인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마다 제도의 강제력이 다르고, 제도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수용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인권, 동성애, 섹슈얼리티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선택한 직접적 계기는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회를 보고 나서다. 홍준표씨의 ‘돼지 흥분제’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나는 친구들로부터 “페미니즘을 책으로 배웠냐, 남자들 그런 줄 지금 알았냐”는 핀잔을 받았다. 그러나 놀랄 일은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토론회를 보고 지지 후보를 바꿨다. ‘토론 문화’의 승리다!

중요한 것은 의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대개의 후보들은 무엇이 찬반과 시비, 가부(可否)의 대상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하다. 심지어 동성애도 아니고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람이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흑인 차별에 반대한다는 말은 있을 수 있어도, 인종 문제와 관련해 “블랙을 좋아하십니까, 싫어하십니까” 류의 말은 가능하지 않다.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는가?”란 질문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질문 자체가 폭력인데 답할 필요가 있을까. 나라면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에 반대한다”고 말할 것이다. 존재와 행위는 그것이 범죄로 판단될 때만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 기준도 사회 구성원의 의식에 따라 변화한다.

동성애는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38쪽). 그러나 우리는 그를 철학자로 생각하지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한편, 당대 한국사회의 어떤 배우는 배우나 인간이기 이전에 언제나 동성애자로 인식된다. 배우, 철학자, 동성애자, 인간은 배타적인 범주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주지하다시피 근대적 인권 개념의 핵심인 보편성은 해부학의 발달에서 기인했다. 인간의 몸은 같다. 모든 이의 피는 붉으며 눈물에는 색깔이 없다. “그들의 인권은 인정하지만 인권을 보장하는 법제화에는 반대한다?” 보편의 반대는 특수가 아니라 차이다. 하지만 보편성은 언제나 특수성이라는 범주를 고안하여 권력의 필요에 따라 특정한 인간을 배제시킨다. 이번 사건은 소수자 이슈가 ‘아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의 국민에 대한 존중과 지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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