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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어떤 메모] gender.or.kr

등록 2017-01-20 20:51수정 2017-01-20 21:03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대한민국 넷페미史>, 권김현영·손희정·박은하·이민경 공저, 나무연필, 2017

2015년, 나는 가는 곳마다 “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지 않으세요?”라는 항의를 받았다. 나름 겸손한 의미로 “저는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사람이지 아직 페미니스트가 아닌데요. 그리고 20년 전부터 많이 (선언)했는데요”라고 말했다. 그 뒤 나는 트위터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맙소사,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주의에서 매체는 중요한 연구 주제지만 그렇다고 꼭 에스엔에스(SNS)나 인터넷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남성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메갈리안부터 여초(女超) 커뮤니티에서만 활동하는 여성 유저, 스스로 ‘넷페미’라고 선언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의미도 각각 다르다. 메갈리아 논쟁이 한창일 때, 여성단체의 상근자 교육을 갔는데 과반이 메갈리아를 처음 들어본다는 이들이었고 몇 명은 “제가 바로 그 메갈이에요. 여자 일베라고들 하는…”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성이 온라인과 맺는 방식은 이렇게 다양하다. 역사 쓰기는 사람들을 이어준다. 좋은 ‘교과서’가 나왔다. <대한민국 넷페미史>. ‘넷페미’는 인터넷 페미니스트의 줄임말로 이 책은 피시(PC)통신 시절부터 다루고 있지만 넷페미라고 통칭한다. 이제 온라인은 가상현실, 세컨드 라이프가 아니다. 오프라인 국가와 동급의 ‘또 하나의 실제 세계’다. 누가 더, 어디가 더 현실적이고 영향력이 있는가는 사안에 따라 다를 뿐이다. 둘은 연동하고 경쟁하고 교류하는 ‘국제사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국가에 이중 국적자, 난민, 유목민이 있다. ‘온오프 이중 국적’이 바람직한 시대다.

넷페미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온라인 연구라기보다는 여성운동의 역사, 한국 사회를 아는 것이다. 여성의 역사에 대해 거다 러너의 말만큼 가슴을 치는 명언은 없을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조망한다”. 남성은 자기 경험과 욕망을 중심으로 족보(‘역사’)를 만든다. 역사 이야기는 남성들이 열광하는 장르다. 자기 삶이 곧 인류의 역사라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자기 인식은 역사와 연결되기 어렵다. 남성은 자기를 과잉 보편화하고, 여성은 자기 역사를 모른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김활란, 허정숙, 최용신보다 보부아르부터 읽고, 그보다 로자 파크스나 안드레아 드워킨을, 그보다 버틀러를 먼저 읽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시간에 따른 진보라는 오해 때문에 가장 최근의 책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가 국정(國定)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이론과 여성운동 모든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발군의 연구자 권김현영의 첫 장은 맨발로 눈밭을 뛰었던 여성들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그 옛날부터’ 온라인에서 얼마나 치열한 젠더 전쟁이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여성주의자는 물론 인터넷 콘텐츠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필독을 주장한다. 이 역사를 복기한다면, 여성들은 매번 같은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한국인 최초의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 이승희씨 논란부터 천리안 ‘화냥년 아이디 삭제 사건’, 군 가산제 논쟁, 그 유명한 언니네(unninet.net)의 ‘자기만의 방(1380개가 만들어졌다)’, 2004년 창간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ildaro.com)의 저력, “선영아, 사랑해”로 시작된 상업 자본의 침투까지.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넷페미의 투쟁을 보면, 지금 인터넷 문화가 성별을 불문하고 얼마나 ‘후퇴’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 글의 제목 ‘gender.or.kr’은 인터넷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2000년부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주관해 10년간 운영한 사이버 성폭력 신고 센터의 웹사이트 주소다(32쪽). 이명박(MB) 정권 이후 여성부 장관 중에서 젠더의 의미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모든 여성의 역사가 그렇지만, 넷페미의 역사를 알 때와 모를 때 넷페미니즘의 역사는 달라진다. 이 책은 그 첫 성취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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