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박목월 지음, 삼중당, 1976
‘올림머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 중 하나다. 어머니의 이미지 차용. 세월호 사건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이슈였다. 그런 머리 모양은 시간과 사유 능력을 잡아먹는다. 업무가 많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머리, 그야말로 국정 농단의 일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머리 사건이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성’ 대통령 문제가 아니라 가족 우상화 정책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되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면,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고사하고 개인적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할로우 맨(hollow man)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할로우 맨>에 나오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몸의 일부인 뇌 조직을 완전히 절개한, 작동이 멈춘 운영체계.
조광희 변호사는 <씨네21> 1082호에서, “그는 성공한 정유라일지도 모른다… 작가라면 그의 전기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전기야말로 ‘국사(國史)’가 될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정신분석가 랑거에게 요청한 보고서 <히틀러의 정신분석>이나 <박정희의 정신분석> <부시의 정신분석>은 쉽게 읽힌다. 박 대통령의 경우 여성성, 부모 문제 등 정통 정신분석 작업이 될 테지만 쓰기도 읽기도 어려울 것 같다.
육영수가 사망한 지 2년 만에 나온 전기 <육영수 여사>는 시인 박목월의 ‘역작’이다. 세로쓰기 2단에 깨보다 작은 글씨, 56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다 날짜와 사건 등 ‘사실’에 충실하다. 실제 집필 기간은 1년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문인의 능력이다.
1974년 총격 사건 당시 서울의 인구는 654만명. 이 중 200만명이 “통곡으로 길을 메웠고”, 사후 1년 반 동안 3천만 국민 중 1천만명이 묘소를 참배했다고 한다. 육영수는 49세에 사망했다. 안타까운 나이다. 한국인의 그에 대한 애정은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었다. 최초의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는 그녀와 같을 수 없었고, 게다가 이승만을 둘러싼 인(人)의 장막 중 한 사람이었다.
‘근혜양’은 1972년(만 20세)부터 어머니를 대신하여 해외방문을 시작한다. 73년 하와이에서 ‘한국이민 7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이 결정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육영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근혜에 대해선 내가 잘 알아요. 실수 없이 잘 해낼 테니, 염려 없어요.”(464쪽) 박목월이 ‘근혜양’에게 청와대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해외여행 갈 때 바늘과 실, 소화제까지 챙겨주신 어머니의 보살핌과 깊은 애정”이라고 말한다. 이에 박목월은 “따뜻한 자정(慈情)”이라고 감동한다.
육영수는 큰딸의 해외방문 때 비서진을 불러 “기자든 누구든 어떤 문제를 질문받더라도 자신이 알아서 답변하도록 가로막지 말라”고 지시한다. 하와이 방문 후 어느 여교수가 “근혜양이 퍼스트레이디 자질이 충분하다”고 칭찬하자, 육영수는 “왜 퍼스트레이디예요? 대통령이 될 자질은 못 되고요? 라고 농담”한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 책이 찬양 일색의 ‘위인전’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또한 육영수의 큰딸에 대한 자부심이 단지 자식 사랑만은 아닐 것이다. 스무 살의 근혜양과 지금의 박 대통령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간은 나이 들고 변화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과 달리 그는 ‘삶을 살았다’기보다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이제, 5·16부터 50년 넘게 한국 사회를 목 졸랐던 그 일가는 죗값을 치르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부모처럼 생을 마감하지 않은(을) 현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는 ‘김재규’가 아니라 국민의 민주주의 역량으로 정치생명을 다했다. 식민 콤플렉스와 근대화 욕망, 개인들의 출세 욕구. 그 욕망을 달성할 수 없는 무능력, 무능력의 의지처였던 박정희. 그 종착역은 겨우 최순실이었다. 한국 사회는 박정희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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