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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희진의 어떤 메모] 근혜에 대해선 내가 잘 알아요

등록 2016-12-16 20:47수정 2016-12-17 11:12

<육영수 여사>, 박목월 지음, 삼중당, 1976

‘올림머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 중 하나다. 어머니의 이미지 차용. 세월호 사건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이슈였다. 그런 머리 모양은 시간과 사유 능력을 잡아먹는다. 업무가 많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머리, 그야말로 국정 농단의 일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머리 사건이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성’ 대통령 문제가 아니라 가족 우상화 정책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되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면,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고사하고 개인적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할로우 맨(hollow man)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할로우 맨>에 나오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몸의 일부인 뇌 조직을 완전히 절개한, 작동이 멈춘 운영체계.

조광희 변호사는 <씨네21> 1082호에서, “그는 성공한 정유라일지도 모른다작가라면 그의 전기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전기야말로 ‘국사(國史)’가 될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정신분석가 랑거에게 요청한 보고서 <히틀러의 정신분석>이나 <박정희의 정신분석> <부시의 정신분석>은 쉽게 읽힌다. 박 대통령의 경우 여성성, 부모 문제 등 정통 정신분석 작업이 될 테지만 쓰기도 읽기도 어려울 것 같다.

육영수가 사망한 지 2년 만에 나온 전기 <육영수 여사>는 시인 박목월의 ‘역작’이다. 세로쓰기 2단에 깨보다 작은 글씨, 56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다 날짜와 사건 등 ‘사실’에 충실하다. 실제 집필 기간은 1년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문인의 능력이다.

1974년 총격 사건 당시 서울의 인구는 654만명. 이 중 200만명이 “통곡으로 길을 메웠고”, 사후 1년 반 동안 3천만 국민 중 1천만명이 묘소를 참배했다고 한다. 육영수는 49세에 사망했다. 안타까운 나이다. 한국인의 그에 대한 애정은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었다. 최초의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는 그녀와 같을 수 없었고, 게다가 이승만을 둘러싼 인(人)의 장막 중 한 사람이었다.

‘근혜양’은 1972년(만 20세)부터 어머니를 대신하여 해외방문을 시작한다. 73년 하와이에서 ‘한국이민 7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이 결정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육영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근혜에 대해선 내가 잘 알아요. 실수 없이 잘 해낼 테니, 염려 없어요.”(464쪽) 박목월이 ‘근혜양’에게 청와대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해외여행 갈 때 바늘과 실, 소화제까지 챙겨주신 어머니의 보살핌과 깊은 애정”이라고 말한다. 이에 박목월은 “따뜻한 자정(慈情)”이라고 감동한다.

육영수는 큰딸의 해외방문 때 비서진을 불러 “기자든 누구든 어떤 문제를 질문받더라도 자신이 알아서 답변하도록 가로막지 말라”고 지시한다. 하와이 방문 후 어느 여교수가 “근혜양이 퍼스트레이디 자질이 충분하다”고 칭찬하자, 육영수는 “왜 퍼스트레이디예요? 대통령이 될 자질은 못 되고요? 라고 농담”한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 책이 찬양 일색의 ‘위인전’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또한 육영수의 큰딸에 대한 자부심이 단지 자식 사랑만은 아닐 것이다. 스무 살의 근혜양과 지금의 박 대통령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간은 나이 들고 변화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과 달리 그는 ‘삶을 살았다’기보다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이제, 5·16부터 50년 넘게 한국 사회를 목 졸랐던 그 일가는 죗값을 치르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부모처럼 생을 마감하지 않은(을) 현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는 ‘김재규’가 아니라 국민의 민주주의 역량으로 정치생명을 다했다. 식민 콤플렉스와 근대화 욕망, 개인들의 출세 욕구. 그 욕망을 달성할 수 없는 무능력, 무능력의 의지처였던 박정희. 그 종착역은 겨우 최순실이었다. 한국 사회는 박정희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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