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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

등록 2016-10-14 21:03수정 2016-10-14 21:10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한연 옮김, 민음사, 2016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자신과 사회를 알고, ‘아는 방법’을 아는 세계관이다. 여성주의 입문서를 소개해달라는 이들에게 내가 주로 추천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후루이치 노리토시(<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희망 난민>), 미우라 아츠시(<하류사회>), 우치다 타츠루(<하류지향>), 가타다 다마미(<철부지 사회>). ‘좋은’ 책이라기보다는(문제적 내용도 많다) 당대 자본주의를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폐허의 묵시록들이다.

특히 도쿄대 박사과정 학생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가 26세(1985년생)에 쓴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주목받았다. 나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러나 최근 번역된 그의 책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 보육원 의무 교육화>를 읽으니 빨리 인정받는 이들은 책을 천천히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1980년대 초반 윤리학의 전환점이 된 캐롤 길리건의 ‘공적 영역에서의 보살핌 이론’을 이제야 발견하고 흥분하는 모습은 남성 지식인의 전형이다.

제목부터 꽝! 책 내용은 제목과 부제 그대로다. 에도 시대의 무사들은 아이를 키우기도 했지만(86쪽), 오늘날과 같은 육아는 아니었다. 이처럼 책 내용은 근대 초기에 형성된 모성 신화를 분석한 페미니즘 이론과 비슷한 길을 간다. 문제는 ‘촉망받는’ 저자의 낡은 사고방식이다. 왜 아이를 국가가 키워야 하는가? 나는 이 진부한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왜 남성들은 아이를 “키우겠다”, “키워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가. 왜 그들에게 육아는 언제나 남(여성, 국가, 사회)의 일인가.

말할 것도 없이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다. 그러나 남녀에 따라 다르다. 이제까지 여성의 일생은 육아와 맞바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은 여성에게 육아를 맡기거나 사회화를 요구하면 그만이다. 저자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구조를 모른다. 그의 주장이 실현되려면, 모든 남성이 최소 10년 이상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 전까지 국가는 절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육아에서 국가보다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는 남성을 ‘따라갈’ 뿐이다. 육아가 여성운동의 의제인 것 자체가 잘못이다. 육아는 남성의 성역할이 되어야 한다. 남성도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 분열, 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

육아와 가사를 전적으로 여성에게 떠넘기면서도 엄마들을 ‘맘충(mom 蟲)’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미소지니 문화에서 육아 인프라는 절실하다. 그러나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가 ‘육아로 고통받는’ 남성 대중의 압력을 받지 않는 한, 질 좋은 보육원은 공약에 머물 것이다.

이혼 사유 중 가장 흔한 것은 성격 차이가 아니라 경제 문제, 가사 노동, 상대방의 불성실한 생활 태도 등이다. 여성주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르의 지적대로 육아와 가사노동은 ‘아웃소싱’이 어려운 분야다. 집안일은 연속적이라 교대와 의사소통, 합의가 쉽지 않고 여러 사람이 분담하기 힘들다. 한 사람이 일정 시간 일한 이후, 순서를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다. “벌써 빨래 돌렸니? 안 돌려도 되는데” “찌개가 쉬도록 뭐 했냐” “왜 그걸 버렸어? 쪄서 먹으면 되는데”…. 가사일도 이러한데 육아는 24시간 지속적 돌봄 노동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저자가 첫 번째 책에서 분석한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젊은이 중 자본주의에 새롭게 적응한 이들을 말한다. ‘사토리’는 달관, 깨달음, 득도라는 뜻으로 돈, 출세, 소비를 포기하고 자족적인 삶에 안주 혹은 만족한다. 우리의 ‘3포 세대’와 비슷한데(?) 일본의 ‘득도 세대’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여성들은 이미 달관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다.

사실 나는 저자만큼 저출산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 사회는 저출산 대책보다 인구 분산이 더 근본적인 선결 과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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