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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원병제

등록 2016-10-07 20:38수정 2016-10-12 10:50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메모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문승숙 지음, 이현정 옮김, 또하나의문화, 2007

남한은 지구상에서 면적당 가장 많은 미군기지가 주둔하고 있는 국가다. 한반도는 세계 최고의 병영사회 ‘2개국’이 대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주의 연구가 희소한 것은 필연일까 역설일까. 재미 여성학자 문승숙의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Militarized Modernity and Gendered Citizenship in South Korea, 한국의 군사화된 근대성과 성별화된 시민권)>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작이다.

1963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가 가능했던 동력은 ‘군사적이고 생산적인 남성 만들기’와 ‘생산에서 주변화되고 가정적인 여성 만들기’라는 성별 분업이었다. 즉 한국 사회의 성별 관계의 비대칭(성차별)은, 여성과 남성이 국가에 통합된 방식의 차이라는 것이다(23쪽).

책의 후반부, 1987년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로의 편입이 본격화된 김대중 정권부터는 분석틀이 달라진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민권은 “군대 갔다 와서 철든 남자”(젠더)에서 점차 계급(‘금수저’, ‘능력 있는 여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책의 후속편이 나올 때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병력 충원 방식의 변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지원병제, 여성 징병 주장이 나오다가 최근에는 저출산→ 인구 감소로 인해 논의가 빈번해졌다.

여성을 포함 지원병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보인다. 1만명의 현역 여군, 군 입대로 평등과 취업이 가능하다고 보는 페미니스트와 진보 인사, 소수 정예 군대 지향의 애국적 자주국방론자다. 60만명 중 1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관심병사’는 군을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이다. 징병제로 인한 ‘아무나 입대’는 문제다(그나마 세번째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여성의 군 입대가 남녀평등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참고).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끔찍한 시나리오는 북한과 이스라엘처럼, 남녀 모두 징병되는 것이다. 인구(남자)가 부족하니 여자로 채우자, 이것이 미국이 가장 바라는 바다. 그간 저출산이라는 여성의 저항이 군 입대로 ‘결실’을 맺을 판이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리국방(한미동맹)’ 체제에서 우리 국방부가 얼마나 의견이 있는지 회의적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육해공군 비율은 약 8:1:1. ‘보병 60만명’ 이상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 육군과 미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미국산 무기 소비와 유난히 높은 한국의 장교 비율을 감안할 때, 이는 국가안보‘보다’ 더 중요한 남성 실업 이슈다. 미국의 군수산업과 한국 남성의 경제적 이해를 이길 집단이 지구상에 있을까?

군대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군축이나 군사주의를 성찰하는 논의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슬픈 현실은 지원병제 주장 발언이 가능한 한국 사회의 지적(知的) ‘과감성’이다. 이들의 전제는 ‘내 가족과 그들’의 구분이다. 지금보다 군인의 지위가 높았던 유신 시절부터 특권층 자녀의 입대 비리는 골칫거리였다. 징병제 내내 ‘신의 아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두 번의 대선에서 여당 후보를 낙마시킬 정도였다. 지원병제는 이 신분제를 합법적으로 보장하자는 얘기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군대는 필요악이라는 사고에서 군인은 필요하지만, 내 자식이 갈 수는 없으므로 여성을 포함하여 취업 차원에서 갈 사람은 가라는 것이다. 분업은 계급의 시작이다. 한 직종에 특정 인구 집단이 집중 종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전쟁에는 반대하지만 군인의 인권을 존중한다. 분업은 곧 차별, 편견, 사회적 비가시화를 의미한다.

지원병제 주장에는 가난한 이들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신자유주의, 특정 계층이 하는 일이라는 계급주의, 지식인(?)의 ‘맨스플레인’이 있다. 사회적 발언권과 경제력이 있는 이들의 약육강식의 논리, 이것이 군사주의다.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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