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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화는 감정이다

등록 2016-09-09 20:33수정 2016-09-09 20:42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근대성과 육체의 정치학>,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홍성민 옮김, 동문선, 2003

지난 8월26일 금요일 아침부터 겨우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날을 기억할 정도로 올여름, 더웠다. 나만의 감식법인데 ‘8월 하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나이 듦에 대한 심정을 알 수 있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고 좋아하는 이들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올해 같은 8월이 가는 것조차 서운한 이들은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후자다. 인간은 원래 소통 불가능한 동물이지만 이 심정을 ‘젊은이’는 모를 것이다. 역지사지가 가장 어려운 영역은 나이 차이가 아닐까. 한쪽은 거쳐 왔고, 한쪽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완벽한 비대칭.

나는 여느 해처럼 이번 여름 내내 골방에 처박혀 일만 했다. 에어컨을 싫어해서 창문만 열어 놓고 찜통 속에서 두통을 앓으며 극기(?)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계절이 떠나는데도 섭섭한 것이다. 가을은 순식간, 겨울은 지긋지긋 길겠지, 여름은 언제 오려나…. 중년은 가을, 노년은 겨울, 청춘은 봄, 5월은 활기차고 11월은 쓸쓸하다? 적절한 비유라 해도 북반구에 한정되는데, 계절과 생애의 관계는 완고하다.

몸에 대한 사유는 인문학의 처음이자 끝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근대성과 육체의 정치학>은 근대 이성의 발명을 위해 대상화된 몸에 관한 총괄적인 보고이자 해석이다. 몸을 매개로 근대사회의 실상(“발전 경로”)을 추적한다. 당연히 거의 모든 학제(인류학, 철학, 정치학, 의학, 사회학, 페미니즘 등)를 통과하는 지식의 보고다. 사례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장면이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하다. 서구 중심의 근대성 그 자체와 한계를 이해하는 데 맨 앞에 세울 만한 책이다. 번역도 좋고 내용도 쉽다.

7장 ‘참을 수 없는 노화’는 노화와 노인에 대한 사회적 재현(표상)을 다루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몇몇 분야는 나이에 근거한 철저한 인종·신분사회다. 군대 동기가 ‘별’을 달면 또래도 ‘옷을 벗는다’. 법조계, 신문사, 학계까지 그렇다. 이런 분들 빼고는 오늘날 나이 듦의 의미는 예전만큼 정확하지 않다. 짐작하기 어려운 나이들이다. 얼마 전 택시기사의 뒷모습을 보고 50대라고 짐작했는데 75살이란다. 동안도 흔하다. 몇 살부터 나이 든 사람일까? ‘3포’에서 ‘7포 세대’까지, 생애주기 규범(나이에 맞는 사회적 역할)이 비현실화된 사회에서 나이는 이전과 다른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노인을 “회색대륙”이라 부른다.

고령화 사회, 내 걱정거리는 상호 혐오다. 사람들은 노화를 의식하면서 자기혐오와 싸우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겐 안도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특히 여성들이 자주 쓰는 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는 말이 나는 매우 불편하다. 자글자글. 스스로에 대한 방어이자 여성의 여성 혐오다.

저자는 노화의 실제 현상보다 시선, 이미지, 인식에 집중한다. 몸은 세월 앞에 노출되어 있지만 몸의 이미지는 인생의 초창기에 형성되고 내내 학습된다. 하지만 노화는 전 생애에 걸쳐 진행되므로 사실 노인의 범주는 임의적이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노령의 개념이 다르다. 삶은 누구에게나 질병과 피로, 나이 듦의 시간이다. 그래서 나이 듦은 느낌이다. 타인의 시선을 내재화한 자기감정인 것이다.

“노화는 오랫동안 발아기에 있는 씨앗과 같다. 밖에서(사회) 주는 양분에 따라 때로는 뿌리가 빨리 자라고 때로는 느리게 자라는 것처럼, 타인의 감정에 따라 노화는 달라진다. 노화는 생물학적 나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만이 인지하는 지표들이 망라된 것이다. 나이는 자기 마음대로 들지 않는다. 우리는 사유(cogito)의 경험처럼 명백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도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젊다고 믿을 수도 있다. 노화는 감정이다.”(176쪽)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다. 노화는 인생 자체다. 태어나고 시간이 흐르고 죽는다. 특별하지 않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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