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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경제성장 없이도 우린 행복할 수 있나

등록 2014-05-14 16:26수정 2014-05-15 10:44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성장의 한계

도넬라 H. 메도즈, 데니스 L, 메도즈, 요르겐 랜더스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2012)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 시스템역할 그룹이 로마클럽의 위임을 받고 연구에 돌입하던 1970년, 나는 초등학교 5학년, 까까머리 모범생이었다. 글짓기, 웅변, 만들기…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다했다. 그중에서도 포스터 그리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증산, 수출, 건설’이란 굵은 글씨 아래 톱니바퀴 모양의 공장 지붕에 우뚝 솟은 굴뚝들. 그 굴뚝에서는 반드시 회색 연기가 뿜어 나와야 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으면서 나는 이미 미래를 살고 있었다. 국민소득 1천달러, 전국 일일생활권, 마이카시대. 사회 전체가 군복으로 갈아입고 앞만 보고 내달렸다. ‘개구리복’을 입은 국민들은 대부분 개구리로 변했다. 그것도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잘살아보세’였다. 10월 유신이 선포되던 1972년, 우물 밖에서는 훗날 세상을 뒤흔들 한 권의 책이 나왔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의 신새벽을 학수고대하던 그때, 로마클럽은 사회와 국가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미래를 염려했다.

꿈꾸고 네트워크 만들라
진실을 말하고 배우고 사랑하라
농업혁명·산업혁명 다음은 마음혁명

로마클럽이 위임한 지구 미래 예측 프로젝트 보고서가 바로 <성장의 한계>였다. 하지만 세 연구자들의 경고는 환영받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40여년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던 성장신화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세계 인구가 150억에 달해도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책은 두 번째 개정판으로 초판 발행 30년을 기념해 발간된 것이다. 연구팀이 붙잡은 화두는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연구팀은 ‘월드3’라는 컴퓨터 모형을 통해, 세계 인구와 경제가 지구의 수용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인류의 미래를 전망했다. 초판에서 예측한 세계 인구와 식량증산량의 증가는 적중했다. 두 번째 개정판에서는 좀 더 암울한 판정이 나왔다. 1980년대 후반 지구의 수용 능력이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비관하지 않는다. 자원의 한계, 끊임없는 성장 추구, 사회적 대응의 지체가 일으키는 인과관계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구적 차원의 현명한 정책, 기술과 제도의 변화, 정치적 목표의 쇄신, 그리고 개개인의 꿈이 어우러진다면 더 나은 미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은 세 번째 혁명, 즉 지속가능성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인류의 세 번째 혁명을 위한 행동 지침이 흥미롭다. 꿈꾸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진실을 말하고, 배우고, 사랑하라. 이것이 혁명의 5대 강령이다. 낯익지 않은가. 인류의 세 번째 혁명은 ‘마음의 혁명’이다.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지속가능성 혁명을 위해 우리가 꿈꾸고, 배우고, 사랑하며 네트워크를 만들 때, 우리가 공유해야 할 첫째 모토는 이것일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지난 40여년, 우리의 성장은 개발독재에 의한 압축 성장이었다. 그러니 그 한계 또한 심각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경제논리 아닌가. 성장의 ‘한계’를 무시한다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 붕괴, 침몰, 충돌, 폭발할지 모른다. 우리의 한계는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다. <성장의 한계>는 “고결하고 소중한 이상으로 마음을 채우라”고 권고한다. 우울과 분노가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이 5월, 마음 가득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자. 이 뻔뻔한 국가, 미개한 정치, 야만적 시장을 넘어가는 힘은 우리가 함께 꾸는 꿈에서 솟구친다. 이것이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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