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2009)
규제는 풀고 세금은 줄이고 공공부문은 사유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렇게 법질서와 사회기강을 세워야 개인이 자유로워지고 서로 이익을 얻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사조가 오랫동안 우리 시대 인간의 머리와 삶의 방식을 지배했다. 이 사조의 고전판은 시장이 자동적으로 조정된다는 믿음으로 ‘자기조정적 시장’론이라 불린다. 대공황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이 버전이 붕괴된 뒤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다시 ‘낙수효과’론이라는 새 버전이 등장했다. 독과점체, 금융투기꾼과 부동산투기꾼, 소수 부자들에게 공적 규제와 책임을 회피하게 해주고 세금을 깎아주며, 노동자를 멋대로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사용자로서 책임을 면하게 해주면 그 떡고물이 대중들에 뿌려지고 일자리도 만들어진다는 게 논지다. 대중들이 분수에 맞게 가진 자들, 강자들의 독식잔치 체제에 고분고분 순응하면 알거지 신세는 면하고 먹고살 수는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파렴치한 독식-투기잔치가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인간의 노동력, 토지, 금융의 고삐 풀린 시장화의 모순은 경제는 물론 하나의 공동체로서 사회 자체를 지속불가능한 위험에 빠뜨린다. 그런 폭력은 대항운동을 낳기 마련이며 따라서 시장화 대 사회적 보호라는 ‘이중운동’이 시장 자본주의 역사 전반을 관통하게 된다. 그러나 이중운동의 역사는 여러 크고 작은 전환으로 나타나며 나라마다 다양하다. 무엇보다 탈규제 시장자본사회의 출구는 반드시 공동성과 공통감각을 키우는 민주진보적 공공성의 길로만 열려 있지 않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후에도 신자유주의는 잘 죽지 않고 있다. 위기 이후 시대는 변화 속에서도 이전과 강력한 연속성을 보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고삐 풀린 소유적 시장사회 출구가 두 갈래 길로, 즉 뉴딜적 길만이 아니라 파시즘의 품으로도 열려 있다는 칼 폴라니의 통찰을 되새기게 된다. 굶주림과 탐욕, 온정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적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우리 시대 이중운동의 역사, 그 모순적 동학과 대안적 비전에 심한 갈증을 느끼며 ‘사탄의 맷돌’을 멈추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세계시민들에게, 무엇보다 복지국가를 건너뛴 압축 시장화와 ‘줄푸세’의 귀결로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겪으며 온갖 무책임 사슬과 공범자들을 목격하고 있는 한국인들, 깊은 슬픔과 분노를 안은 채 세월호 이후 호혜와 공생의 대한민국호를 열망하고 있는 이 땅의 시민들에게 필독의 고전이 아닐 수 없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