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은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논리가 후진국 및 개발도상국이 발전할 기회를 빼앗는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말한다. 2008년 5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10번가 바랑가이 빈민촌에서 한 주민이 길에서 그릇을 씻고 있다. 마닐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자유화·규제완화는 불평등조약
발전을 위한 유일한 모델은 없어 역사적 사실과 구체적 통계로 드러나는 그 모습은 오래도록 정설로 간주됐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즉, 영국과 미국 등 지금의 부국들은 별다른 정부 개입 없이 고전적 자유주의(자유방임과 자유무역)를 토대로 발전한 게 아니며, 그와 정반대로 자국 산업을 맹렬하게 보호했고(보호 관세 및 정부 보조금)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려는 적극적인 산업·기술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국들이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을 채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발전의 기틀을 확립하고 경쟁 우위를 벌려놓은 뒤의 일이라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부국들의 태도가 자신들이 먼저 밟고 올라간 ‘발전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에 비유한다(제1부 경제 정책과 경제 발전). 또한 20세기 말부터 현재의 빈국들이 세계적인 무역·투자의 자유화 및 규제 완화 추세에 밀려서 부국들이 ‘권장’하는 갖가지 ‘바람직한 제도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이 나라들의 경제 발전에 이로운 것인지 따져 묻는다. ‘국제적 기준’에 맞춘 제도적 요소를 수용하는 것이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제2부 제도와 경제 발전). 이러한 논의를 통해 책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개발도상국의 적극적 산업·무역·기술 정책 실행을 제약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합의는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반(半)독립 국가들한테 강요했던 다양한 ‘불평등 조약’의 현대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개발도상국의 손이 닿지 않는 정상에 오른 선진국들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렇다’라고 결론짓는다. 또한 1960~80년 개발도상국의 1인당 평균 성장률은 연 3% 수준이었지만, 선진국이 말하는 바람직한 정책이 활용된 1980~99년에는 오히려 연 1.5%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도 지적한다(제3부 선진국의 경제 발전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무엇보다 책은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발전 모델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국의 발전 단계와 구체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어떤 제도와 정책이 이로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게 이로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김홍식 경제서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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