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논어 읽기, 새로운 시선의 출현
리링 지음
김갑수 옮김
글항아리(2012)
유가 최고의 경전인 <논어>는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고전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제자들이 편찬한 공자의 언행록이다. 이 왕조 시대의 낡은 글을 오늘 왜 읽어야 하는가. 비록 2500년 전의 글이지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자신의 삶을 요약한 발언은 유명하다. 그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於學), 서른에 일어섰으며(立), 마흔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不惑), 쉰에는 천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에는 귀가 순해졌고(耳順),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從心所慾不踰矩)고 했다. 이 발언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공자가 평생 성장해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신체의 성장이 멎을 즈음, 마음 그릇의 성장도 멎는다. 몸이 다 컸기 때문에 더 이상 자랄 게 없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이 발언은 몸의 성장이 멈춘 뒤에도, 인간의 마음 그릇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 스스로가 어느 시점에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일흔이 될 때까지 평생 자신의 마음 그릇을 확충하고 또 확충해간 사람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신의 아들인 예수와도 다르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부처와도 다르다. 여기에 공자의 인간적인 솔직함과 매력이 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자기가 닦아온 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도 마음 그릇을 더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말한다. 나이 마흔, 쉰, 예순에 이르도록 여전히 절박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자기 성장을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 사람들이 이끄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른의 탐욕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가는 지옥도를 더 이상 그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 그릇을 넓혀 공자는 무엇을 하려 했을까. 공자는 “자기를 닦아 사람들을 평안하게 하는 것”(修己以安百姓)과 “널리 베풀어 대중을 건지는 것”(博施濟衆)을 목표로 삼았다. 훗날 그의 제자들은 공자가 그린 이런 이상향을 ‘대동(大同) 세상’이라고 정의했다. 어른이 된 뒤 마음의 성장이 멎은 ‘아이 어른’이 지배하는 세상은 지옥과 다를 게 없다.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이들이 <논어>에서 읽어내어야 할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인간이란 평생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
<논어>에 관한 번역본은 수백 종이지만, 최근 고고학적 발굴 성과까지 반영해 <논어>를 풀이한 리링 중국 베이징대 교수의 <집 없는 개>가 단연 돋보인다.
이상수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