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회화보다 선명한 ‘이야기 세밀화’ 그려

등록 2014-05-14 15:40수정 2014-05-15 10:48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 영상 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무크 지음
이난아 옮김
민음사(2009)
영상문화와 자본주의가 거대한 권력으로 횡행하는 시대에 과연 문학이, 소설이, 어떤 존재의미로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그건 다름 아닌 객관적인 현상이나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는 과학이나 역사보다 주관적 직관과 감성을 중시하는 문학의 우월성, 즉 문학이 지닌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터키 문학 사상 최초로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는 신작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형식과 기법을 선보이며 장르 간의 해체나 새로운 콘텐츠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는 터키의 전통 화풍인 세밀화에 대한 전문 지식과 세밀화의 역사 지식을 바탕에 깔고 오스만 시대에 실존한 세밀화가들의 예술가로서의 장인정신과 고뇌를 묘사하면서, 이와 대치되는 베네치아 회화라는 새로운 화풍과 전통화풍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배치하여 세밀화가 살인사건의 비밀을 밝혀가는 과정을 추리소설의 플롯에 담아 긴장감 있게 끌어가고 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목소리들이 차곡차곡 겹쳐지면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기법을 적용하고 있는 동시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넓은 화폭 위에 대단히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오브제들을 연상시킨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파무크는 서술적 상상력을 통해 회화를 재현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의 회화화와 더불어 미술사, 화파, 기법 그리고 화가와 그들의 작품 소개는 물론, 작품 속 어느 장면이 과거에 존재하는 그림의 장면으로 대치되거나 소설 속의 어느 단락, 장면은 삽화로 대치될 수 있게끔 세밀하게 묘사하고, 소설의 발단이 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 줄거리조차 그림의 고고학적 추적에 의해서 단서를 포착하여 범인을 밝히는 형식 등의 작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파무크는 이 소설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미술 장르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고, 예술가의 삶과 창작 과정을 함께 다루면서 회화와 문학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내 이름은 빨강>은 소설적 상상력을 통한 ‘회화의 재현’으로 해석할 만한 근거가 있으며, 이로써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시도들은 영상과 인터넷 시대에 도래한 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난아 번역가·터키문학박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1.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저 평등의 땅에’ 작곡 류형수씨 별세 2.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저 평등의 땅에’ 작곡 류형수씨 별세

웹툰 플랫폼 ‘피너툰’ 서비스 일방 종료…작가들 “피해 보상” 3.

웹툰 플랫폼 ‘피너툰’ 서비스 일방 종료…작가들 “피해 보상”

조성진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5위…서울은 가장 뜨거운 음악도시 4.

조성진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5위…서울은 가장 뜨거운 음악도시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에 백온유…수상자 7명 전원 여성 5.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에 백온유…수상자 7명 전원 여성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