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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명준의 ‘절망’에서 다시 출발하자

등록 2014-05-14 15:35수정 2014-05-15 10:50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 분단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광장
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1996)
이제는 현대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정전(正典)의 반열에 오른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은 주인공 이명준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전쟁을 전후한 문제적 시기 지식인의 삶과 이념,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처음 발표된 지 어언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이 소설에서 묘사된 남북한의 현실에 대한 예리한 진단과 서늘한 성찰은 지금 이 시대의 기준으로 판단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지금까지 열번 넘게 개작된 <광장>은 한국어로 표현되는 아름다움과 지성의 가능성을 한껏 확장하고 심화시킨 걸작에 해당한다.

<광장>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질문은 ‘분단시대의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주인공 이명준은 한국전쟁 직전의 남한 사회의 현실에 깊게 절망한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라고 요약되는 이명준의 인식은 이 점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거니와, 결국 그는 해방 직후에 먼저 월북한 아버지를 따라 북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명준이 북한에서 목도한 것은 개인적인 ‘욕망’이 터부로 되어 있는 ‘잿빛 공화국’이었다. 그는 북한 사회에서 짙은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하는 명준의 질문은 전혀 충족되지 못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사랑과 연인, 그리고 육체의 즐거움이다.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라는 이명준의 독백은 이념과 역사에 절망한 지식인의 내밀한 실존적 풍경을 상징한다. 그러나 전쟁의 풍파는 그에게 온전히 사랑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이명준은 포로교환 과정에서 중립국행을 선택해 인도행 타고르호에 오르지만 결국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 점은 <광장>을 관류하는 질문, 즉 ‘분단시대의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적어도 당시 상황에서는 이명준이 어떤 희망과 대안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아프게 표상한다.

역설적으로 이명준의 절망과 고뇌를 통해 분단사회의 극복을 위한 해법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최인훈이 <광장>에서 제기한 질문은 이 땅의 독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되새길 수밖에 없는 영원한 화두로 남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완고한 적대의식이 여전히 팽배한 이 슬픈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건대, 이명준의 절망에서 우리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

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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