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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30년 지났지만 불의와 불평등은 왜 끝나지 않는가

등록 2014-05-14 15:29수정 2014-05-15 10:50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2000)
1970년대 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이제 곧 쫓겨날 어느 철거민의 집에 앉아 있었다. 낙원구 행복동이었다. 호주머니를 털어 사 간 소고기로 국을 끓여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그때 해머를 든 철거반들이 몰려들었고, 모든 인간적인 게 허물어져 갔다. 그는 이 야만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저항을 준비했다.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고, 여기부터는 벼랑이라고 적었다. “이런 슬픔, 이런 불공평, 이런 분배의 어리석음이 미래에는 없기를” 바라는 시대의 경계표지, 주의표지를 열두개의 단편으로 정리했다.

그 주의표지에는 우리 시대의 약자, 가난한 자, 소수자, 소외당하고 핍박받는 모든 이가 적혀 있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그들의 분노와 사랑과 이상이 간결하고 투명한 문체로 함축되었다. 시대의 약자들은 난쟁이로, 꼽추로, 앉은뱅이로 상징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이 작고 구부러졌다고 누구나 갖는 존엄한 인격의 양까지, ‘생명의 양’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 1978년 세상에 태어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라는 청년이었다.

그 후 30년이 훌쩍 넘고 그동안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지만 안타깝게도 이 주의표지, 경계표지는 지금도 여전히 아프고, 선명하고, 유효하다. 그의 말처럼 “지금,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오늘도 여전히 수적 다수이면서도 권력의 소수일 수밖에 없는 무수한 난쟁이들이 김불이가 올랐던 고공으로 올라가고 있다. 한국 근대화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변 광고탑에 유성기업 노동자 이정훈이 올라가 있고, 송전탑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있는 경북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 그 하늘로 올라가 있다.

무수한 난장이들 오늘도 고공으로

“혁명이 조그마한 개선에 저지 당해”

조세희 선생 여전히 그들 곁 지켜

앉은뱅이들의 상황은 어떤가. 얼마 전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며 싸워오던 송국현 선생이 자립생활홈에서 산 채로 화장당했다. 그 며칠 뒤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대회 당시 정부와 가진 자들은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쏴댔다.

9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들의 인권은 작아질 대로 작아져 이젠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노동운동은 여전히 불법화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짓눌리고 모든 안정적 삶들이 철거당하거나 유린당하고 있다.

왜 이런 불의가 끝나지 않는 것일까? 왜 난쟁이들은 30년이 지나도 자라지 않는 걸까?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선생은 그 후에도 늘 난쟁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던 시대의 목격자였다. 2005년 11월15일 여의도에서 다국적 식량자본들의 이해에 몰려 두명의 농민이 토끼몰이에 죽어갈 때도 나는 선생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2006년 포항제철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의 장례식장과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들이 올라간 서부역 망루 밑에도 선생은 있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의 집회에서도 카메라를 멘 여전히 진지한 한 청년을 나는 만날 수 있었다.

2009년 1월20일 용산참사가 일어난 날 저녁,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전화를 해왔던 선생의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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