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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참한 상황만이 존재의 함성일뿐

등록 2014-05-14 15:18수정 2014-05-15 10:51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새 고전 26선]
☞ 사회적 개죽음은 어떻게 저항하나

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
새물결(2008)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에서 ‘재발명’한 소위 호모 사케르는 벌거벗은 생명, 신성한 생명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본래 ‘호모 사케르’는 로마제국에서 법적 테두리 바깥으로 추방된 자를 지칭하는데,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존재”라는 기묘한 위상에 놓이게 되었다. 로마법은 잘 정비된 합리적인 법망으로서 토지를 소유한(슈미트) 시민권자의 권리가 옹호된다. 호모 사케르는 그 권리가 박탈당한 본의 아닌 무소유적 존재여서 ‘예외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로마제국 내부로 그 생명의 가치가 환기되는 ‘희생양’과 달리 ‘호모 사케르’는 “통고된 죽음”의 형식으로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은폐된, 익명의 죽음, 즉 간단히 말해서 사회적 개죽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아감벤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그런데 지연되고 있는 수용자들, 일명 무젤만이라는 존재로부터 거꾸로 로마제국의 ‘호모 사케르’로 계보학적 역행을 통해 이 ‘호모 사케르’ 개념을 착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보학적 역행을 따라 그 당대에 항상 나타나는 ‘호모 사케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9·11 이후 일극화된 미국의 부시 정권이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야만적으로 취급했던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를 ‘호모 사케르’로 폭로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에서는 용산 참사라든가 밀양 송전탑, 세월호 사건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야만이 극에 달할 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을 이 개념으로 조명한 바 있다.

그런데 ‘호모 사케르’로 사회적 진단을 내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 개념에 대한 비판도 비등하다. 왜? 이 개념을 통해 어떻게 정치적 저항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예술과 인접한 사상가들의 답변이 있었다.

네오아방가르드에 영향을 준 스즈키 다이세쓰의 선불교, 사르트르의 상황극, “미디어는 신체의 확장”이라고 천명한 매클루언의 미디어 등등이 이구동성으로 “전인격의 투신”이라는 개입과 저항을 표방한 바 있다. 역설적으로 ‘신성한 생명’이라는 삶과 죽음의 고비에 놓여 있는 비참한 상황이 외려 존재의 함성이 되는 셈이다.

물론 에스엔에스(SNS)처럼 변화된 미디어 환경이 ‘호모 사케르’를 일파만파로 파급시키고 있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김남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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