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국에서 출판된 <여성·문화·사회>는 여성 인류학자 14명과 여성학자 2명의 논문을 모은 책이다. 지은이들은 이 책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비대칭(성차)을 초래한 기초는 무엇이고, 성차가 어떻게 성별 위계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성차(섹스)가 위계화된 여성성 그리고 남성성의 문제(젠더)가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현실에 저항하는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이 전 사회에 퍼진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여성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참아내고, 종속적인 여성들의 처지를 ‘자연스런’ 상태로 이해하고 수용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당시 여성운동과 여성학은 혁명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 책 또한 당시 전 사회를 소용돌이치게 했던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의 산물이다.
공동 편집자인 미셸 짐발리스트 로잘도와 루이스 램피어는 책을 시작하면서 “왜 여성은 ‘타자’인가”라는 마거릿 미드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질문을 던져놓는다. 이들은 적어도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의 기원은 아니라는 입장을 갖고, 성차의 문제는 문화적 관념과 상징 차원에서 작동되는 문제라고 보았다. 성차는 성역할이라는 공사 구분의 틀 속에서,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메타포의 작동 속에서, 무의식적이고 정서적인 사회화 과정 속에서 위계화된 성별관계로 배열되고 구성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생물학적 환원주의, 즉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다르고, 심리적·상징적으로 다르게 이념화된다는 설명 방식은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쉽게 수용되는 성차에 대한 이해 방식이었다. 이를 벗어나는 인식론을 만들기 위해 지은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비교문화적인 접근이다. 문화에 따른 남녀 성역할의 다양성, 성역할이 수행되고 배치되는 사회관계의 다양성, 국가나 친족 혹은 공동체가 남녀 성역할과 맺는 다양한 관계의 사례 등을 제시하면서 남녀의 차이 또는 성역할 구분이 사회마다 얼마나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여성·문화·사회>는 여성 종속의 보편성에 대한 가정이나 공사 분리에 관한 서구 중심의 인식론적 기반 때문에 출간 이후 논쟁의 중심에 놓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성차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으며 이론적·방법론적 통찰의 출처가 되고 있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