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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앞서 간 수레가 왜 뒤집혔는지 기억한다면

등록 2014-01-12 19:57수정 2014-01-13 15:45

고세규 김영사 편집주간
고세규 김영사 편집주간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2000년)
“역사 속에서 왜 어떤 사회는 몰락하고 어떤 사회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발전된 문명을 이뤘던 마야 사람들이 대단한 천문학과 문자, 사원 등을 가졌을 때 왜 무너졌을까요. 지도자의 역할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모두가 안녕해야 합니다.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 됩니다.” <문명의 붕괴>를 쓴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말이다.

“우리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오늘의 치욕을 잊지 말자.” 병자호란 직후 조선의 지도자 송시열과 윤휴가 통곡하며 다진 약속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정적이 된다. 윤휴는 학문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인물. 율곡과 퇴계는 물론 주자도 비판 대상이었다. 반면 송시열은 주자학을 만고의 진리로 여겼다. 윤휴가 주자의 <중용집주>를 자기 견해로 해석해 가자, 송시열이 발끈했다.

“하늘이 공자에 이어 주자를 내셨으니 만세의 도통이다. 주자 이후로는 일리(一里)도 밝혀지지 않은 게 없고, 일서(一書)도 명확해지지 않은 게 없는데, 윤휴가 감히 자기 견해를 내세워 억지를 늘어놓으니, 진실로 사문난적이다.”

결국 송시열의 노론에 의해 윤휴는 죽음을 맞는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언급된, 극단적 찬사와 저주 사이에 놓인 논쟁적 인물 송시열. 지은이 이덕일은 집필계획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으로 한국 사회에서 금기처럼 다루어지는 이 문제적 인물의 신화화에 대해 말한다.

“송시열에 대해 쓰겠다는 계획을 두고 지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가치 없다는 게 아니었다. 쓸 가치는 넘칠 만큼 있지만 한마디로 우려된다는 반응이었다.” 논란을 무릅쓰고 지은이는 “송시열을 신화에서 인간의 자리,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파탄에 부채를 지녀야 하는 한 정치가의 자리로 끌어내려”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송시열 활동 당시는 조선 격변기. 거듭된 정권 교체는 물론, 농업과 상공업 발달, 계층 이동 등 근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남송에서 사대부 이익을 위해 태어난 주자학으로는 이 흐름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반면 정권을 잡은 서인과 송시열은 주자학 강화로 나아갔다. 송시열은 “다행히 주자 뒤에 나서 학문이 어긋남이 없다”고 말했지만 주자학이 정치에 적용되면서 어긋남이 너무 컸던 게 송시열의 비극이었고, 조선의 비극이 되었다.

“유학의 진정한 조선화는 소중화가 아니라 양반 사대부 중심 유학을 일반 양인 중심 유학으로 바꾸는 것이어야 했지만, 송시열에게 중요한 건 사대부 이익, 서인과 노론이란 당의 이익이었다. 그의 당은 조선 마지막까지 정권을 잡았지만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

시대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 다른 견해는 반역으로 몰아가는 일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들의 나라가 아닌 모두의 나라를 위해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뒷수레가 경계한다는 복거지계(覆車之戒)의 교훈이 필요한 때다. <장자>의 고금불이(古今不二)처럼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찾아 문명을 탐사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최종 도착지도 <어제까지의 세계>, 오래된 지혜였다.

고세규 김영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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