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여는 생각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지방대 졸업 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저는 밥그릇 확보를 위해 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행태에 도무지 안녕할 수 없다.” 19일 한 일간지에 실린 한 젊은 독자의 글이다. 그는 “전셋값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결혼 약속을 연기할 수밖에 없”으며 “대기업·공기업 다니는 동년배에게 배알이 꼬이”긴 하지만 “이를 사회구조, 정치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극히 보수적인 젊은이라고 여겨지는가. 사회학 강사 오찬호(34)씨는 2008년부터 5~7개 대학 강의를 하며 이런 20대를 수도 없이 만났다. 그가 5년 만에 완성한 논문을 풀어쓴 책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그가 만난 많은 20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차별과 배제’에 찬성했다. 적어도 20대 대학생의 다수는 그랬다. 책은 20대가 ‘학력 위계주의’를 비판 없이 내면화했으며 그 뒤엔 “자기 계발을 권하는 사회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20대들은 ‘언젠간 잘될 것’이라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 자신보다 못한 수능·토익 점수를 받은 이들에 대해선 “덜 노력했으니 당연한 대가”라고 매몰차게 평가한다. 각종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도,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사회도, 대학도 비판 대상이 아니다. 외려 많은 20대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을 “노력도 안 했으면서 날로 먹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20대는 어린 나이에 외환 위기를 겪는 부모를 지켜보며 ‘실직 공포’를 학습했고 대학도 언론도 부모조차도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했다. 20대의 “안녕”을 묻기엔 우리 사회는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고 책은 지적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일단 살고 보자”…자기계발이 부른 ‘학력주의’
지은이는 지금, 이십대의 ‘스펙 쌓기’를 열등감과 우월감의 범벅으로 파악한다. “모두가 멸시를 극복하고자(열등감), 그리고 멸시를 유지하고자(우월감)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2008년 5월13일 경기도의 한 대학 강의실. 사회학 강사 오찬호씨는 이날 자신의 수업인 ‘인권과 평화’ 시간에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물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한 경영학과 4학년 남학생의 의견을 듣는 순간 오씨는 ‘저 학생이 사회학도가 대부분인 이 강의실에서 수구꼴통 청년으로 몰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 학생 의견에 동의하면 손을 들어보라 하니 수강생 3분의 2 이상이 적극 지지를 표했다. 결국 이날 강의는 마치 전경련 주최 행사 느낌의 찬반토론으로 학생들과 나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정규직화 요구가 “날로 먹는 것”이란 20대들의 ‘확신’을 목도한 뒤 그는 ‘20대 연구’에 돌입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펴냄)는 사회학자 오찬호씨가 2012년 여름에 낸 박사학위 논문을 ‘대중적 글쓰기’로 풀어낸 책이다. 그는 5년 동안 동덕여대, 목원대, 서강대, 서경대, 세종대, 아주대, 안양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20대’를 연구했다. 2000장이 넘는 학생들의 에세이를 분석했고 50여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차별과 배제의 법칙을 내면화한’ 20대의 실체와 마주했다고 했다.
지은이는 “20대 전체가 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하면서도 “이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일련의 패턴”이란 점은 분명히 한다. 우선 한 학생의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좀더 들여다보자.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그 뒤에 만난 20대들은, 심지어 촛불집회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이들까지도 “파업 노동자는 불쌍해 보이지만 일차적 원인이 개인의 ‘노력 부족’에 있으므로 파업 내용에는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 고시원, 컵밥, 이태백, 3포 세대 같은 말에서 보듯 20대야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는 처지라 여겼던 지은이는 갑갑증을 느껴 서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자기 계발의 늪’이었다 한다.
책은 “정말로 가슴 아픈 건, 자기계발서가 많이 팔리고 또 이를 읽고 감동받아 일상에서 자기 계발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수록 절망에 빠져 있는 끔찍한 이십대의 이야기는 비례해서 늘어난다는 사실”이라며 “이건 늪이요 덫”이라 지적한다.
20대의 자기 계발은 세 가지 특징을 띤다고 책은 분석한다. 첫번째, ‘취업’ 목표로서만 의미가 있다. 이들에게 자기 계발이란 외국어 공부, 학점 관리, 자격증 취득, 인턴십, 봉사활동, 공모전 참가, 외모 가꾸기, 자기소개서 작성 연습, 스피치 훈련 등을 뜻한다. ‘계발’(啓發)이 아닌 ‘개발’(開發)의 성격이 짙다.
두번째 특징은 자기 계발의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데도 다른 대안이 없어 그저 계속 하고만 있다는 점이다. 외부 평가를 받기 위한 계발이었기에 ‘성과’, 즉 취업이 되지 않는다면 이 계발은 무의미하다. 노력해도 계속 취직이 안 된다면 이십대들이 고통스러운 자기 계발에 의문을 제기할 만도 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세번째 특징이다.
대학생 인터뷰와 에세이 통해
차별과 배제 내면화의 실체 분석 취업만을 위한 자기계발 열풍
타인에 대한 배려심 사라지고
스펙쌓기는 열등·우월감 뒤범벅
학벌은 과시용에서 멸시용으로 기회·과정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아프니까 청춘”은 거짓된 인식 바로 “이십대들이 ‘자기 계발에 열심이지 않고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이다. 결과물이 없어도 거기 투자한 ‘과정’만으로도 “너는 나처럼 노력하지 않았잖아!” 하는 기준을 만들어내 자신을 방어한다고 책은 설명한다. “그리하여 20대들은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엄격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요구를 조금의 배려도 없이 단호하게 평가한 것처럼 말이다. “자기 계발이 아무리 괴롭고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기업이 정한 토익 기준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반감’을 갖진 않는다. 그것은 ‘노력과 성실성을 따지는 정당한 기준’이기 때문에 억울하면 공부하면 될 뿐이다. 학력 위계주의의 미세한 계단 하나 차이를 놓고도 와각지쟁은 벌이지만 그런 싸움을 온존시키는 더 큰 사회구조의 문제에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의 논리와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결과 ‘학력 위계주의’는 20대의 강력한 특징이 됐다. 책은 과거의 ‘과시용’ 학벌주의가 오늘날 ‘멸시용’ 학력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분석한다. “서울대생은 연고대생을, 연고대생은 서강대생을, 서강대생은 또…. 그렇게 밑바닥까지 멸시의 고리는 이어진다. 그래서 멸시를 받는 쪽이라고 과연 누군가를 멸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생 집단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스펙 쌓기’는 열등감과 우월감의 범벅이다. “모두가 멸시를 극복하고자(열등감), 그리고 멸시를 유지하고자(우월감)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며 “이것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뛰고 또 뛰는 이십대들이 살아가는 법칙이자 그들이 쉴새없이 뛰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책은 이대로라면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20대 불안 심리’의 뿌리를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이들이 어린 시절 겪은 1997년 외환 위기가 있다. 직장에서 단칼에 내팽개쳐진 아버지, 혹은 그럴 수 있다는 공포감에 짓눌린 분위기 속에서 20대들은 사회화됐다. 대학조차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자본에 잠식당한 대학은 모든 분야에서 ‘더 경영학적으로’ 변모하려 노력중이다.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경영할 줄 안다!’는 기업가적 자아는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언론이 ‘20대들의 절박함’만 주목한 이후, 이들은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아니라 불쌍한 ‘구원의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사회에 책임을 묻는 ‘변혁’이 아닌 “일단 살고 보자”가 득세했다는 설명이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대안이 있느냐”고 누구보다 20대들이 소리높여 따질 터다. 책은 원래 그런 세상, 바뀌지 않는 세상은 없다며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20대가 이 지점을 이해하고 다른 세대가 이십대의 슬픈 몽타주를 직시하는 일이 대안이라고 책은 말한다. 20대가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 이런 우리가 안녕한 것이냐는 질문을 책은 던지고 있는 셈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지방대 졸업 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저는 밥그릇 확보를 위해 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행태에 도무지 안녕할 수 없다.” 19일 한 일간지에 실린 한 젊은 독자의 글이다. 그는 “전셋값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결혼 약속을 연기할 수밖에 없”으며 “대기업·공기업 다니는 동년배에게 배알이 꼬이”긴 하지만 “이를 사회구조, 정치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극히 보수적인 젊은이라고 여겨지는가. 사회학 강사 오찬호(34)씨는 2008년부터 5~7개 대학 강의를 하며 이런 20대를 수도 없이 만났다. 그가 5년 만에 완성한 논문을 풀어쓴 책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그가 만난 많은 20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차별과 배제’에 찬성했다. 적어도 20대 대학생의 다수는 그랬다. 책은 20대가 ‘학력 위계주의’를 비판 없이 내면화했으며 그 뒤엔 “자기 계발을 권하는 사회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20대들은 ‘언젠간 잘될 것’이라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 자신보다 못한 수능·토익 점수를 받은 이들에 대해선 “덜 노력했으니 당연한 대가”라고 매몰차게 평가한다. 각종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도,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사회도, 대학도 비판 대상이 아니다. 외려 많은 20대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을 “노력도 안 했으면서 날로 먹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20대는 어린 나이에 외환 위기를 겪는 부모를 지켜보며 ‘실직 공포’를 학습했고 대학도 언론도 부모조차도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했다. 20대의 “안녕”을 묻기엔 우리 사회는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고 책은 지적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취업을 위한 자기 계발에 내몰린 20대들이 ‘차별과 배제의 법칙을 내면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한 대학교 졸업식날 학사모를 쓴 채 취업 정보를 살펴보고 있는 대학생의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차별과 배제 내면화의 실체 분석 취업만을 위한 자기계발 열풍
타인에 대한 배려심 사라지고
스펙쌓기는 열등·우월감 뒤범벅
학벌은 과시용에서 멸시용으로 기회·과정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아프니까 청춘”은 거짓된 인식 바로 “이십대들이 ‘자기 계발에 열심이지 않고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이다. 결과물이 없어도 거기 투자한 ‘과정’만으로도 “너는 나처럼 노력하지 않았잖아!” 하는 기준을 만들어내 자신을 방어한다고 책은 설명한다. “그리하여 20대들은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엄격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요구를 조금의 배려도 없이 단호하게 평가한 것처럼 말이다. “자기 계발이 아무리 괴롭고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기업이 정한 토익 기준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반감’을 갖진 않는다. 그것은 ‘노력과 성실성을 따지는 정당한 기준’이기 때문에 억울하면 공부하면 될 뿐이다. 학력 위계주의의 미세한 계단 하나 차이를 놓고도 와각지쟁은 벌이지만 그런 싸움을 온존시키는 더 큰 사회구조의 문제에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의 논리와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결과 ‘학력 위계주의’는 20대의 강력한 특징이 됐다. 책은 과거의 ‘과시용’ 학벌주의가 오늘날 ‘멸시용’ 학력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분석한다. “서울대생은 연고대생을, 연고대생은 서강대생을, 서강대생은 또…. 그렇게 밑바닥까지 멸시의 고리는 이어진다. 그래서 멸시를 받는 쪽이라고 과연 누군가를 멸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생 집단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스펙 쌓기’는 열등감과 우월감의 범벅이다. “모두가 멸시를 극복하고자(열등감), 그리고 멸시를 유지하고자(우월감)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며 “이것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뛰고 또 뛰는 이십대들이 살아가는 법칙이자 그들이 쉴새없이 뛰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책은 이대로라면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20대 불안 심리’의 뿌리를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이들이 어린 시절 겪은 1997년 외환 위기가 있다. 직장에서 단칼에 내팽개쳐진 아버지, 혹은 그럴 수 있다는 공포감에 짓눌린 분위기 속에서 20대들은 사회화됐다. 대학조차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자본에 잠식당한 대학은 모든 분야에서 ‘더 경영학적으로’ 변모하려 노력중이다.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경영할 줄 안다!’는 기업가적 자아는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언론이 ‘20대들의 절박함’만 주목한 이후, 이들은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아니라 불쌍한 ‘구원의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사회에 책임을 묻는 ‘변혁’이 아닌 “일단 살고 보자”가 득세했다는 설명이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대안이 있느냐”고 누구보다 20대들이 소리높여 따질 터다. 책은 원래 그런 세상, 바뀌지 않는 세상은 없다며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 기회는 균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20대가 이 지점을 이해하고 다른 세대가 이십대의 슬픈 몽타주를 직시하는 일이 대안이라고 책은 말한다. 20대가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 이런 우리가 안녕한 것이냐는 질문을 책은 던지고 있는 셈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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