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스의 눈에 비친 경제위기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얼마 전, 한 중국 학자와 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말했다. “여러 한국 경제학자들과 이야기 해봤지만 다들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심이 없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모르면서 어떻게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외눈박이’ 한국 경제학의 정곡을 찌르는 것 같았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이런 풍토 속에서도 꿋꿋하게 마르크스 경제학의 렌즈로 현실을 연구해온 학자다. 이 책에서 그는 가치, 화폐, 착취, 국가, 이윤율 저하 법칙 등 정치경제학의 틀로 대학시절 추억부터 우리 주변의 뉴스와 사연들, 경제 위기의 뿌리를 분석한다. 분석은 치밀하고 깊지만,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는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주도해온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만물의 상품화’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기술발전에 따른 자본구성의 고도화로 1970년대 이윤율 저하 경향이 나타나자, 자본은 금융화와 정보화 같은 비생산적 산업의 팽창에 의존해 새로운 잉여가치의 창출을 시도했고, 이것이 현재 위기의 뿌리가 됐다.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 20년을 맞은 현재, 시장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외치던 목소리는 공포에 묻혀 버렸다. 새로운 해법을 둘러싼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지은이는 시장 근본주의를 비판하지만, 장하준 교수식의 ‘국가의 귀환’ 해법에도 부분적으로 비판적이다.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고 그 자체가 계급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장 대 국가’ 대신 ‘자본 대 공공성’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자고 제안한다. /창비·1만5000원.
박민희기자
minggu@hani.co.kr
■ 이광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와 허동현 경희대 교수가 지난 2003년부터 <프레시안>에서 벌여온 한국 근대 100년 논쟁에 대한 세 번째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다.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두 사람이 한국의 근대를 바라보는 열쇳말은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다. 박노자 교수가 본 지난 100년은 ‘국민국가의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개인을 길들인 시대였다. 무한경쟁, 노동자 착취, 여성 차별은 이 프로젝트가 낳은 괴물들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한 세기 전에는 개화와 수구, 친일과 반일로 사람들이 갈라서더니 이제는 보수와 진보 같은 편가르기가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고 본다.
시각차는 이광수 평가를 보면 두드러진다. 이광수는 톨스토이의 평화주의에 심취했으면서도 일제의 침략전쟁도 찬양했던 인물. 박노자 교수는 이광수의 양면성은 ‘국가 신화’에 빠져 개인이라는 가치는 잃어버린 결과라고 설명한다. 반면, 허동현 교수는 이광수는 줄곧 민족주의를 신봉했으며 다른 가치는 상황에 따라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본다. 이광수가 주장했던 ‘민족을 위한 친일’ 논리도 연장선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광수를 실재하지도 않는 민족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것도 의미가 없으며, 차라리 우리 안의 파시즘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박노자 교수는 왼쪽이고 허동현 교수는 오른쪽이라고 색깔을 칠하지는 말자. 두 사람은 절대적 진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통을 하기 위해 글을 주고받았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푸른역사·1만50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돈벌이 경제’로는 살 수 없다
〈살림의 경제학〉
“돈벌이 논리 위에 사다리 질서로 움직이는 경제를 ‘죽임의 경제’라 부른다.” 충남 조치원 신안1리 이장이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현재의 돈벌이 패러다임에서는 한마디로 모든 삶의 가치가 돈벌이에 있다”고 고발한다. 돈벌이 경제가 억압과 착취, 기만과 파괴를 일삼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건강하고 온화한 관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내면과 정신까지 파괴한단다. 이러한 돈벌이 경제, 죽임의 경제에 대한 ‘대안 경제’가 바로 살림의 경제다.
지은이는 살림의 경제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와 더불어 사람의 내면과 정신을 살리는 경제”로 정의한다. ‘노동력이 떨어지면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죽임을 부르는 경쟁과 이윤의 법칙’ ‘경제성장이 인류 행복의 필수 조건인가’ ‘일중독과 소비중독으로부터의 해방’ ‘개발주의와 신개발주의,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등의 화두를 계속 던지면서, 살림의 경제학이란 틀로 우리에게 익숙한 ‘우상’을 깨는 작업을 벌인다.
살림의 경제는 본디 의미로서 ‘경제’(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일)의 회복 운동이다. 생명 살림, 스스로 살림, 계속 살림, 서로 살림 등이 살림의 경제의 4가지 원칙이다. 자본주의 돈벌이를 넘어서는 패러다임,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실천, 탐욕 시스템이 아닌 지속가능 시스템, 녹색 사회로의 이행, ‘배부른 임금 노예’에서 벗어나기 등 우상을 깨나가는 작업들은 새로운 대안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강수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골탕먹지 않고 의료소비 할 비법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
아프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병보다 병원이 ‘창궐’하는 이유다. 건강 염려증을 줄인다면 사람은 편하고 병원은 불편하다. 현실은 어떤가. 건강을 둘러싼 산업은 공룡처럼 비만하다. 병원은 영리를 내세우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시민들은 주머니 털어 건강검진 받고 주사 맞고 약 먹고 입원한다. 정녕 모두가 그리해야만 해서 그럴까. 그들은 모두 ‘병자’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
의사 출신 의료전문기자’인 지은이가 보기에도 그렇다.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은 8년차 기자가 건강을 둘러싼 오해와 몰상식, 비뚤어진 의료 현실을 고발하고 고백하는 책이다. 언론이 경박한 기사를 쏟아내면 시민들은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킨다. 덩어리째 뭉텅뭉텅 사실로 믿어버린다. 소화가 안 된다. 너나없이 ‘문맹’이다. 눈을 떠야 한다. 지은이는 말한다. ‘헬스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건강 정보를 제대로 독해하는 능력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신문과 방송의 뉴스를 다시 보십시오. 다른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책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쓰였다. 애초에 만병통치란 없으며 희대의 신약이란 신기루일 뿐이라고 말한다. 필요한 건 합리·이성·판단이다. 민주주의가 그러하듯 건강도 의사와 병원의 선의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검증된 정보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결국 병실에 누워 후회하거나 묵직한 의료비 청구서를 들고 주저앉게 된다. 헛다리를 짚는 것이다. 눈이 흐려서다. ‘건강 문맹’인 이들을 위해 지은이가 눈뜨게 해준단다. 그는 ‘심청’이다. 김양중 지음/한겨레출판·1만1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백성의 눈으로 본 조선왕조 500년
〈왕을 참하라 상·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열 번 읽은 이가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를 또 보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재미’ 사학자인 지은이는 “역사만큼 재미있는 학문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사실은 신화나 소설로 둔갑돼 있다. 하여 그는 “사극을 보면서 역사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딱한 민중들을 위해”, “우리 역사의 치부를 모두 들추어내어 가감없는 역사의 진실에 접근한 젼혀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서”를 썼다.
500년 조선역사를 두 권에 34개의 장으로 나눠 거의 연대순으로 나열한 점은 남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같은 사실이라도 ‘백성의 편에서’ 걸죽한 육담과 거침없는 독설을 섞어 서술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걸걸한 변사의 인도로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지은이가 보기에 조선은 진작 망했어야 할 나라다. 악랄한 양반제도와 명에 대한 철저한 사대가 민중의 고혈을 바탕으로 하여 500년 왕조를 버텨온 것이다. “조일전쟁(임진왜란) 이후 300년에서 25년 간의 정조 시대를 빼고는 존재할 가치가 전혀 없는 왕조였다.” ‘콩가루 집안 태조 이성계’, ‘꼬마 동생들을 패대기쳐 죽인 태종 이방원’,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쪽팔리는 조청전쟁’ 등 차례만 힐끗 보아도 책장을 넘기보픈 마음이 스멀스멀 솟는다. 백지원 지음/진명출판사·각 권 1만1900원.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 흉악범 잡는 프로파일러의 세계
〈인간이라는 야수〉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국내외 연쇄살인사건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살인범의 너무도 평범한 모습에 놀란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우리는 ‘야수’를 알아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악이 어딘가 아주 먼 곳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고 털어놓는다. 야수는 그저 인간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해서 ‘나는 세 사람을 죽였다’라는 카인의 징표를 이마에 새기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들의 진정한 모습은 겉모습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편지 폭탄’ 사건에서 봉투를 열면 폭탄이 터진다는 단순한 범행 수법만 봐선 안 된다. 봉투의 크기와 색깔, 주소 기재 방법, 우표가 붙은 모양새 등 모든 게 주요 관찰 대상이다. 현장 검증을 통해 범행 동기와 용의자 특징을 분석해 검거에 이바지하고, 심지어 자백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들의 활약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은이 토마스 뮐러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오스트리아의 프로파일러로 세계 곳곳의 각종 흉악 범죄 수사에 투입된 바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프로파일러들이 ‘야수’들의 머릿속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9살 먹은 아이의 머리를 곤죽이 되도록 내리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나는 한 사람의 행동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 유사한 범행을 저질렀던 사람과 비교하고 그 속에서 범죄자의 욕망을 읽어내려 노력할 뿐이다.” 김태희 옮김/황소자리·1만38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