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해법’ 등 희망의 정치 제시
〈정치의 미래 그 이상향을 탐하다〉
정치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정치의 미래 그 이상향을 탐하다>는 어떤 정치가 인류에게 희망과 비전을 줄 수 있는지를 살핀, 정치학자 3인의 대담집이다. 경희대 미래문명원과 교육방송(EBS)의 공동기획으로, 조인원 경희대 총장(정치학 박사), 존 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9·11 테러와 국제질서, 북핵과 한반도, 보수-진보의 갈등과 시민사회 등을 주제로 삼아 대화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뉴욕에서 9·11 사건을 지켜봤던 조 총장은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배려 없이 인류에게 희망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하던 미국 시민운동 지도자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던 교수는 9·11이 국제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논리의 기저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문제가 드러난 것이었던 데 비해, 북핵 문재는 한국의 고통스러운 역사, 미해결 상태로 남은 냉전의 마지막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북한에) 핵을 포기해도 좋을 만한 유인책을 제공하면서 정권교체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주는” 압박과 대화의 병행을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결국 희망은 현실 정치의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에 있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정치란 미흡한 부분을 바꾸기 위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라는 던 교수의 말에, 조 총장은 고군분투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정치혁명, 패러다임 혁명”을 찾아나서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경희대미래문명원·2만원.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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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협정안, 헌법까지 위협”
〈최재천의 한미 FTA 청문회〉
자·타칭 통상전문가는 한국에 많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란 단일 주제로 책 한 권을 쓸 만큼 공력이 깊은 고수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낙선의원’ 최재천 변호사가 그들 중 하나다. 4년차 초선의원이던 2007년 그는 국회 한미에프티에이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확한 현안 파악과 핵심으로 육박하는 송곳 질의로 거짓과 은폐의 방어막을 친 관료들을 매섭게 몰아쳤다. <한미 FTA 청문회>는 200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그가 한미에프티에이와 관련해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과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이다.
글쓴이가 처음부터 ‘에프티에이 고수’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전공’은 경제나 통상과는 거리가 먼 법과 통일·외교였다. 이런 연유로 에프티에이에 대한 그의 접근 역시 대부분 법을 매개로 이뤄진다. 일각의 오해와 달리 그는 자유무역 반대론자가 아니다. 협상의 기밀주의와 일방주의, 한미에프티에이 협정안에 내장된 반헌법적 독소조항을 문제삼을 뿐이다. 그가 볼 때 한미에프티에이는 “단순한 조약 수준을 넘어 국내법과 세제를 개폐시키고 헌법마저 변경시키는 거대한 위협”이다.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와 ‘역진방지조항’은 사법권뿐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국가의 경제개입과 공공정책을 무력화한다. 그가 초기부터 한미에프티에이를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이런 점에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협상론이 제기되는 지금이야말로 “한미에프티에이가 지닌 헌법적·정책적 의미와 경제적 영향과 피해대책에 대해 차분히 토론하고 뒤돌아볼 때”라고 그는 말한다. /향연·1만5000원.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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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음을 공유하는 우리’를 위하여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경식(58) 일본 도쿄경제대학 교수는 지식인인가. “전문가가 될 수 없고 지식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스스로 말한다. 지금은 부정한 시대이므로, 정의를 부르짖는 지식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의롭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목표를 위해서 또는 미국 일국 지배 하의 세계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다른 차원의 대답”을 하는 사람은 결코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처럼 디아스포라이며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했다.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 잘못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항하는 것.”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는 서경식 교수가 2006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연구휴가를 얻어 한국에 머물며 남긴 강연·세미나·대담을 묶은 책이다. 한국인 가운데 진보라며 분칠한 이들조차 국가·민족·가족·성·죽음 등에 대해 통념·고정관념·선입견에 갇혀 있다고 그는 단언한다. “당연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전제를 다시 한번 의심하고 … 간단히 답을 얻을 수 없는 답답함을 견디며 끊임없이 묻는 것, 자신을 기존 관념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기어이 정신적 독립을 얻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지적 태도”라는 게 그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특히 “주어진 답을 공유하는 ‘우리’가 아니라, 어려운 물음을 공유하는 ‘우리’로서 되풀이해서 만남을 이어가기 위하여” 펴냈다는 설명이다. 염결한 지성의 바탕에 사람 사이 만남을 그리워하는 ‘소년의 눈물’이 묻어 있다. 비판마다 갈피마다 ‘경계인의 고뇌’가 눅진해 책장을 당기고 자리를 고쳐 앉게 된다. /철수와영희·1만4000원.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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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깎이 스님이 만난 24가지 절망
〈묵언마을의 차 한잔〉
1997년 10만명당 13명, 사망 순위 세계 8위. 2007년 10만명당 31.5명, 사망 순위 세계 4위. 우리나라 자살 통계다. 여기에는 동반자살로 인한 배우자나 아이들의 사망은 포함돼 있지 않단다. 타살로 처리돼서다. 자살 3건당 1건이 동반자살이다. 가히 살인적인 자살률이다. 경북 안동 시골 출신 우석재씨는 구두닦이에서 서울 강남의 대형 음식점 대표, 도의원까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몇십억 원대 재산도 모았다. 지천명의 나이여설까. 그는 2003년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이듬해 출가를 했다. 부처님이 새로 지어주신 이름은 ‘지개야’다. 지개야 스님은 경기도 안성시 칠장면에 ‘묵언마을’이란 사찰을 지었다.
스님은 고달픈 인생의 벼랑에 몰려 찾아오는 중생이 묵언 수행으로 마음의 환생을 하도록 돕는다. 이들이 ‘자살’을 ‘살자’로 바꿔 ‘거듭날’ 수 있도록. 스님이 그간 묵언마을을 찾아온 ‘손님’ 가운데 24명의 소설 같은 인생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밑바닥 인생으로 갖은 고생을 하다 생을 마감하려 마음먹고 찾아온 이부터, 몇 차례의 결혼과 이혼으로 기구한 운명을 겪어야 했던 여인들, 가족의 무관심과 멸시에 못 이겨 이국땅으로 피신했다 동성애에 빠진 청년, 노름에 빠져 패가망신의 위기에 놓인 고위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불현듯 기시감(데자뷔)이 느껴진다. 지개야 스님 지음/10:00AM(텐에이엠)·1만원.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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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생태를 외친 선각자들
〈희망의 근거〉
“21세기는 생태학과 환경의 세기일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도시 환경을 생태학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생물학자 존 토드와 그의 아내이자 동료인 낸시 토드가 한 말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이 자주 뉴스로 보도되는 요즘, 이런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는다. <희망의 근거>에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환경 파괴·전쟁 등을 비판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한 세기 전 선각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특히 1960년대 창간된 영국의 녹색운동 잡지 <리서전스>(www.resurgence.org)를 통해 알려진 100명의 삶과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사상에는 자연과의 조화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녹아 있다. 갈등보다는 협력과 상호 존중을 외치며 또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 을 불어넣는다. 달라이 라마나 마하트마 간디 등 익숙한 인물들 사이로 영국의 찰스 왕세자(웨일스 공) 같은 의외의 이름도 보인다. 웨일스 공은 이성과 과학적 분석만이 강조되는 세태를 비판한다. “나는 본능적 지혜의 진정 어린 이성과 과학적 분석의 합리적 통찰 사이에서 균형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325쪽) 단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100명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욕심일 것이다. 책 뒷부분에는 선각자들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나 도서를 소개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사타시 쿠마르·프레디 화이트필드 엮음, 채인택 옮김/메디치·1만8000원.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 그들은 죽어서 편지를 남겼다네
〈역사를 창조한 이 한 통의 편지〉
나폴레옹은 아내 조제핀에게 날마다 적어도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보내지 않은 편지까지 합치면 훨씬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1796년 3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폴레옹은 “13일에 시작한 편지를 16일까지 끝맺지 않았다니. 나흘이나 걸렸잖소”라며, 답장을 빨리 보내지 않는 아내를 타박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사후 발견된 그의 연애편지는 세 통이었는데, 이른바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것들이다. 고의로 이름과 장소, 연도를 적지 않은 편지에서 베토벤은 “이처럼 가까이 있으면서! 그처럼 멀다니!”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프랑스 시인 베를렌과 랭보의 세기적 연사도 편지의 왕래를 수반했다. 이별을 결심한 베를렌은 랭보에게 “너는 내가 죽어가면서까지 네게 키스하기를 바라고 있나?”라는 편지를 남겼다. 1931년 볼로냐 사건으로 폭력배들에게 얻어맞은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해명 요구 편지는 무솔리니를 전세계 예술가들과 적대적인 관계로 돌려놓았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도 공개서한의 형식을 띤 편지였다. 저술가 이덕희씨의 <역사를 창조한 이 한 통의 편지>가 보여주는 편지에 얽힌 일화들이다. 이 책을 “역사상 위대한 심혼들의 그 모든 육필 편지들을 위한 찬가”라고 부르기를 바라는 지은이는 “지상에서 육필 편지가 영구히 사라져버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고백한다. 편지를 통해 역사적 인물들의 고민과 참모습을 엿보면서, 과연 육필 편지의 무게감을 휴대전화와 전자우편이 이어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문예출판사·1만3000원.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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