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묵향에 실려온 선인들의 ‘자식 걱정’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도 ‘가화만사성’이란 가훈을 벽에 붙여놓았을까. 이젠 한국의 국민가훈이 돼 버린 이 다섯 글자가 아니라면, 그들은 자식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호걸이 …>는 옛 선인들이 남긴 가훈과 유언 31편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책이다. 책을 많이 읽고 항상 겸손하고, 이익을 탐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 시시콜콜해서 잔소리로 들릴 법도 하다. 하지만 행간마다 애틋함이 엿보이니, 자식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조선 초 난세를 거쳐온 재상 신숙주는 아들이 호걸이 되기보단 신중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특별한 삶보다는 순탄한 삶을 원한 셈이다. 유배 중이던 윤선도는 과거에 낙방한 아들에게 “부지런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하늘이 돕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하늘의 도움을 구하려면 선행을 쌓고 어짊을 베풀어 복을 받는 수밖에 없다”며 다독인다. 당장 죽음을 앞둔 아버지들의 절박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귀양지에서 사약을 받아든 김수항은 “문호를 지키는 것이 꼭 과거시험이나 벼슬길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 가문에 독서하는 종자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옛글임을 고려해 가부장적 시선만 걷어낸다면, 수백년 전 아버지들의 꼼꼼하고 다정한 가르침이 묵향에 실려 다가오는 듯하다. 정민·이홍식 엮고 옮김/김영사·1만3000원.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200개의 코드로 보는 ‘지식창고’
〈선샤인 지식노트〉
엮은이 강준만 교수는 이 책이 “사전 성격”을 띤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설명 형식은 전통적인 백과사전보다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닮았다. 주제어를 중심으로 한 사전적 의미뿐 아니라, 관련 서적·언론 기사에 등장한 논란과 공박까지 아우르기 때문이다. 200개 주제어의 성격 또한 전통적 사전의 틀을 완곡히 벗어났다. △ 공리주의 △ 스태그플레이션 △ 힙합 등 일반 사전에서 찾음 직한 ‘표제어’에 그치지 않고, △ 댓글 폐지론 △ 재택근무 논쟁 등 시사용어와 논쟁까지 섭렵했다. 책을 읽다 보면 지식 생산이 누구나 시도해 볼 만한 일이란 생각도 든다. 주제어 설명 과정에서 숱하게 보이는 인용문과 촘촘히 밝혀 놓은 참고문헌의 출처가 이를 대변한다. 강 교수 스스로도 “독자들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지적 서비스 제공”을 천명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형태는 여전히 한 권의 ‘책’이다. 웹 2.0 시대에 걸맞은 위키피디아식 ‘집단적 지식 생산’에 익숙한 독자라면 답답할 법도 하다. 400여쪽으로 두툼하게 제본된 이 ‘지식창고’에는, 직접 지식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편집 기능 따위는 없다. 그래서일까. 엮은이는 “화장실에 놔두고 가끔 펼쳐보는 수준에서 이용하실 걸 권한다”고 밝힌다. 강준만 편저/인물과사상사·1만45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 책은 무엇으로 살아남을까
〈책은 진화한다-크로스미디어 시대의 출판 비즈니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혁명으로 출판업계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책의 모습도 전통적인 종이책에서 벗어나 디지털화가 가속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금까지 출판업계에 희망보다는 불안을 던져줬다. 정보의 디지털화가 책의 유용성을 떨어뜨리고,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책을 멀리한다. 책의 종말론이 횡행하는 시기, 책이 지닌 의미는 무엇이고 책은 살아남을 것인가. 출판평론가 한기호씨는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설립 이후 혁명적 변화를 맞은 책의 미래상을 찾는 작업을 해 왔다. <책은 진화한다-크로스미디어 시대의 출판 비즈니스>는 이런 작업의 중간결산 격으로, 그동안 여기저기 발표했던 글들을 손봐 다시 묶은 것이다 . 글쓴이는 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스토리텔링을 내놓는다. 개인 블로그의 등장으로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 작자로 뜰 수 있는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독자의 주목을 받는 스토리텔링의 구체적 모습과 조건, 사실과 상상력이 결합한 팩션의 유형, 크로스미디어의 전략 등을 제시한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모범적 선례를 보인 초편집의 조건과 흐름, 구체적인 편집기술과 블로그의 활용방안 등도 논하고, 머니게임이 심각한 출판시장 등 최근 출판계의 흐름도 짚어낸다. 한기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1만2000원.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선샤인 지식노트〉
■ 책은 무엇으로 살아남을까
〈책은 진화한다-크로스미디어 시대의 출판 비즈니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