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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범죄 자체보다 섬뜩한 범죄 욕망

등록 2007-08-10 19:07수정 2007-08-10 19:14

<모방범>
<모방범>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지음·양억관 옮김,문학동네

여름이 시작되면서 일본 미스터리를 좀 읽어보자는 다짐을 했다. 미스터리 소설이 처음 한두 권 나올 때는 우습더니, 쏟아진다고 느껴지자 부담이 되었다. 일본 소설 붐 덕분에 미스터리까지 어부지리로 국내에 진입한 것은 사실이나 인기를 이어갈 정도의 매력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으나 종내는 일상 업무에 차질을 빚게 될 줄 모른 채, 미야베 미유키를 시작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등과 더불어 여름을 시작했다. 덕분에 (적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매일 일본 소설 나부랭이만 읽느냐는 빈정거림과 밤마다 뭘 하기에 그리 피곤하냐는 추궁 앞에 떳떳지 못한 날들도 이어졌다.

국내에서 미스터리 장르는 기반이 허약한 터라 일본 미스터리의 성공은 좀 놀라웠다. 전 세계 3억 독자가 열광했고 호러 킹이라고까지 불렸던 스티븐 킹조차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였지 않던가. 지금까지 우리 독자들에게 미스터리란 싸구려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소개된 일본 미스터리는 엽기와 공포가 아닌, 예상치 못한 문제적 주제와 팽팽한 플롯을 방패로 삼았다. 여기에 페미니즘 미스터리를 선보인 기리노 나쓰오나, 사회파 추리소설의 정신과 빼어난 대중적 감각을 지닌 다카노 가즈아키나 온다리즘으로 추앙받는 온다 리쿠 등 매력적인 작가군도 한몫을 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대모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는 빠뜨릴 수 없는 존재다. 그중에서도 〈모방범〉의 무게감은 단연 압도적이다.

〈모방범〉은 일단 분량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원고지 6000장 분량, 500여 쪽짜리 단행본 3권으로 이뤄진 대하 장편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흡인력이 강력하다.

어느 날 도쿄의 한 공원, 쓰레기통에서 여자의 오른팔이 발견된다. 피해자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일대 혼란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 경찰과 시민 그리고 미디어가 혼란에 빠진 사이, 범인은 태연자약하게 방송사에 범죄에 관한 정보를 흘린다. 최초의 피해자로 추정된 마리코의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농락을 할 정도로 고도의 지능범이다. 이후부터는 아예 방송으로 범죄를 예고하는 대담함까지 보인다. 희생자는 늘어가지만 누가 범인인지는커녕, 무슨 목적으로 범죄가 벌어지는지, 누가 피해자가 될지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사건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일반적인 미스터리와는 좀 다르다. 애초부터 범인이 누구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모방범〉에서는 중반부터 범인이 화자로 등장한다. 작가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범죄의 이유 혹은 범죄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해결되지만 범죄는 남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혼돈과 욕망이라는 현대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다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작가가 범죄에 얽힌 인물이라면 사돈의 팔촌까지 쫓아가 시시콜콜한 사연을 풀어내느라 대책 없이 긴 소설을 쓰는 이유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심신은 피폐해지고 생각은 많아지는 여름밤이다.


한미화/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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