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얘들이랑 닮았나요?” 강풀 강도영씨가 최근 나온 <영화야 놀자> 표지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캐릭터와 나란히 웃고 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강씨는 경기도 파주에 신혼방을 차려 작업실을 겸하고 있다.
칸 없애고 대자보 형식…2년치 네편 머리속에
‘그림 잘 못 그리는’ 만화가…이야기로 승부 걸어
‘그림 잘 못 그리는’ 만화가…이야기로 승부 걸어
커버스토리 / 인터넷 ‘스크롤만화 이야기꾼’ 강풀
인터넷이란 새 세상이 열렸을 때, 만화도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존 종이만화를 그대로 올린 인터넷 만화들은 거의 모두 실패했다. 종이칸 만화를 컴퓨터 화면으로 보기가 불편했던 탓이었다. 2000년대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인터넷 만화의 새 틀을 도입한 주역 가운데 강풀이 있다. 책장 넘기는 식이 아니라 스크롤로 아래로 내려가며 다음 장면을 보는 방식이다. 인터넷 만화가의 대표주자가 된 강풀은 이제 우리 문화계 최고의 작가로 성장하고 있다. 장편 5편이 모두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해외에서 그의 작품을 사가고 있다. 문화산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가 된 이 강풀이란 만화가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놀라운 이야기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강풀은 온라인에서 장편만화로 성공한 첫번째 만화가다.기술적으로 인터넷으로는 책처럼 많은 양의 콘텐츠를 보기 힘들다는 정설을 깼고, 내용면에서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했다. 모두 인터넷이란 새로운 멍석이 깔린 덕에 가능했다. 일찌감치 인터넷을 주목한 그는 이야기의 힘에 승부를 걸어 최고의 작가가 됐다. 파주 자택에서 만화 그리기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강풀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가 인터넷을 골랐고 인터넷이 그를 키웠다
강풀은 인터넷이란 멍석이 깔리면서 등장할 수 있었다. 유명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도제식 교육을 받아 만화잡지에 데뷔하는 기회를 잡는 기존 만화 관행은 강풀 같은 작가들에겐 맞지 않았다. 기존 만화가 휘하 화실들은 이야기 솜씨보다도 분업을 위해 그림 솜씨부터 따지기 때문이다. 강풀은 이런 오프라인 데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에 바로 등단한 만화 작가 1세대다.
인터넷 조회수 2억 3800만회는 없었겠죠.
만화가로 첫 취직한 잡지사에서
글쓰는 기자로 눌러앉았다면요.
그릴 통로가 인터넷밖에 없었어요.
대학시절 대자보에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와 접한 강풀은 대학 졸업 뒤 백여군데 신문사와 잡지사에 포트폴리오를 보냈지만 돈 주고 그의 만화를 사겠다는 곳은 없었다. 이후 한 잡지사에서 그를 만화가로 채용했는데, 그의 글솜씨를 보고는 오히려 기자직을 제안했다. 미래의 만화가는 “만화가 더 좋아” 잡지사를 그만두고 2002년, 서른살이 다 된 나이에 무작정 인터넷 홈페이지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유머’가 주를 이루는 ‘엽기개그만화’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이름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수입이 없다보니 인터넷 요금을 못내 인터넷이 끊길 정도로 궁핍했다. 하지만 뚝심으로 만화를 계속 연재한 것은 결국 그에게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출판사 문학세계사 김요일 기획이사가 그를 ‘발견’했고, 문학세계사는 이후 <순정만화> <타이밍> 등 그의 만화를 전문적으로 출간하게 된다. 김 이사는 “처음 강풀 만화를 보고서는 세시간 동안 헤어날 수가 없었다”며 “짧은 만화 안에 완벽한 구조를 갖췄고, 엽기적이면서도 따스한 감성이 녹아 있어 매력적이었다”고 평했다. 장편도 충분히 쓸 역량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무명 만화가인 강풀을 무작정 찾아가 1000만원을 건네며 “나중에 책이 나오면 꼭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약속대로 책이 나왔을 때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공짜로 볼 수 있음에도 <순정만화> 단행본은 10만부가 팔렸고, 나머지 작품들도 최소 만부 단위로 팔리는 등 모두 스테디셀러가 됐다. 기존 코믹스 만화가 아니라 비소설 단행본으로 강풀만큼 잘팔리는 만화가는 현재로선 없다. 인터넷상에서 강풀 만화의 누적 조회수는 2억3800만여회에 이른다. 칸을 파괴해 인터넷 만화의 틀을 만들다 만화의 기본단위인 ‘칸’을 그의 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어차피 ‘칸’의 역할이 다음 칸을 보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도구라면, 인터넷에서는 아래로 길게 내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과감하게 파괴했다. 온라인 만화는 컴퓨터로 그리고 컴퓨터로 보기 때문에 그림 이미지가 크고 글의 폰트도 커야했다. 그림 옆에 글을 써서 그림과 글로 화면을 채우고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다음 장면을 보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강풀이 대학 시절 그리던 대자보 만화 형식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갖고온 것이다. 곧 창작자나 독자 모두 손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출발과 결말을 정해놓고 연재에 들어가죠.
원작자는 신이 돼야 복선 깔며 긴장을 줄 수 있거든요.
살아있는 캐릭터는 저절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네티즌들은 페이지 넘기는 것도 귀찮아해요. 5년째 그리다보니 이 형식에 익숙해졌고, 독자들도 익숙해졌을 거예요.” 보기에 편한 ‘강풀식 만화’는 곧 인터넷 만화의 틀이 됐다. 그림을 못그리는 만화가-‘이야기’로 승부를 걸다
만화계의 철칙 하나.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이야기가 재미없는 만화는 절대 성공 못한다.” 만화라면 으레 그림이 중요할 것 같지만 만화의 성패는 전적으로 글, 곧 이야기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 철칙은 이렇게도 변형할 수 있다. “그림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만화는 뜬다.” 강풀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만화가도 없다.
강풀은 사실 ‘그림 잘 그리는 만화가’는 아니다. 자신도 그걸 정확하게 안다. 그 약점을 오로지 ‘이야기’로 메우고, 이야기로만 승부한다. “그림에 대한 고민은 많이 안해요. 최소한 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게끔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이야기여야 할까. “출발과 결말을 확실히 해놓고 연재에 들어갑니다. 원작자는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해요. 이야기 속에서 글 쓰는 사람은 신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씩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복선도 깔고 긴장감을 줄 수 있죠.”
이야기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그는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인물이 몇회째에 등장하는지 등의 디테일까지 미리 완벽하게 짜놓는다. 그리고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전력을 쏟는다. “제대로된 이야기에 확실한 캐릭터 설정은 필수입니다. 소심한 사람, 착한 사람, 저돌적인 사람 등을 잘 세워놓으면 이야기가 막혔을 때 풀어나갈 구멍이 생깁니다. ‘우유부단한 캐릭터는 우유부단하니까 이렇게 하겠지, 착하니까 이렇게 하겠지, 그럼 이 둘을 붙여놓으면 이렇겠군’하는 식으로요. 캐릭터가 이야기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안하면 드라마처럼 느닷없이 암으로 죽는 식으로 이야기가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고 캐릭터가 갑자기 사라져버려요.”
캐릭터 설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감정이입을 잘 해야한다”고 잘라 말한다. “성격은 그 사람의 과거가 담긴 거라 생각해요. <순정만화>의 김연우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어 소심하고 착한 성격으로 자랐죠. 그런 식으로 모든 캐릭터의 과거와 일생을 만화에 나오지 않는 부분까지 설정해놓습니다.”
누구나 다 좋아할 만한 걸 그려요. 또한 나를 재미있게 하려고 그리죠.
모두 다 착한 사람이에요. 극악한 인물의 필요성을 못느낍니다. 어려부터 영화와 소설에 빠져 산 것이 이야기꾼이 된 밑천이다. 소설은 “한두권짜리 단편은 갑자기 그냥 끝나버리는 느낌이 들어” 열권 넘어가는 장편을 즐겨 읽었다. <삼국지>는 60번 읽었고, 김성종씨와 조정래씨의 소설, 중국 작가 김용의 작품은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고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악역이 없는 이야기
강풀 만화 이야기의 또다른 특징은 “누구나 다 좋아할 만한 걸 그린다”는 점이다. “제 스스로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좋아해요. 영화나 책도 어려운 건 싫어합니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으면 남들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화도 나를 믿고 나를 재미있게 하려고 그리죠.”
그의 만화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주조를 이룬다. 따져보면 이제까지 악역이 등장한 적이 없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들도 결국 다 저만의 사연이 있는, 본성은 착한 사람들이다. “내 이야기의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다 착하다고 생각해요. 극중에서도 극악한 인물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독재정권을 다룬 <26년>은 예외지만. 아무리 못된 인간도 자기도 모르게 위험에 빠진 아기를 보면 구하지 않나요?”
뱀다리를 붙이자면, 이야기를 짜는 데는 만화가 친구들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이야기는 자기 혼자 재미있으면 안 돼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재미있냐고 많이 물어보고 다니는데, 만화가 친구들은 이럴 때 냉정해서 재미없으면 얄짤없어요. 그래서 서로에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사실 이야기꾼은 타고 나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짜내는’ 이야기를 그는 콸콸 넘쳐흐르는 이야기 샘에서 퍼올린다고 한다. “지금도 하고 싶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쌓여있어요. 곧 연재를 시작할 순정만화 시즌3을 비롯해 앞으로 2년 동안 그릴 만화가 네 편이나 머릿속에 있답니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인터넷 스크롤만화 이야기꾼 강풀
만화가로 첫 취직한 잡지사에서
글쓰는 기자로 눌러앉았다면요.
그릴 통로가 인터넷밖에 없었어요.
대학시절 대자보에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와 접한 강풀은 대학 졸업 뒤 백여군데 신문사와 잡지사에 포트폴리오를 보냈지만 돈 주고 그의 만화를 사겠다는 곳은 없었다. 이후 한 잡지사에서 그를 만화가로 채용했는데, 그의 글솜씨를 보고는 오히려 기자직을 제안했다. 미래의 만화가는 “만화가 더 좋아” 잡지사를 그만두고 2002년, 서른살이 다 된 나이에 무작정 인터넷 홈페이지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유머’가 주를 이루는 ‘엽기개그만화’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이름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수입이 없다보니 인터넷 요금을 못내 인터넷이 끊길 정도로 궁핍했다. 하지만 뚝심으로 만화를 계속 연재한 것은 결국 그에게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출판사 문학세계사 김요일 기획이사가 그를 ‘발견’했고, 문학세계사는 이후 <순정만화> <타이밍> 등 그의 만화를 전문적으로 출간하게 된다. 김 이사는 “처음 강풀 만화를 보고서는 세시간 동안 헤어날 수가 없었다”며 “짧은 만화 안에 완벽한 구조를 갖췄고, 엽기적이면서도 따스한 감성이 녹아 있어 매력적이었다”고 평했다. 장편도 충분히 쓸 역량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무명 만화가인 강풀을 무작정 찾아가 1000만원을 건네며 “나중에 책이 나오면 꼭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약속대로 책이 나왔을 때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공짜로 볼 수 있음에도 <순정만화> 단행본은 10만부가 팔렸고, 나머지 작품들도 최소 만부 단위로 팔리는 등 모두 스테디셀러가 됐다. 기존 코믹스 만화가 아니라 비소설 단행본으로 강풀만큼 잘팔리는 만화가는 현재로선 없다. 인터넷상에서 강풀 만화의 누적 조회수는 2억3800만여회에 이른다. 칸을 파괴해 인터넷 만화의 틀을 만들다 만화의 기본단위인 ‘칸’을 그의 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어차피 ‘칸’의 역할이 다음 칸을 보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도구라면, 인터넷에서는 아래로 길게 내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과감하게 파괴했다. 온라인 만화는 컴퓨터로 그리고 컴퓨터로 보기 때문에 그림 이미지가 크고 글의 폰트도 커야했다. 그림 옆에 글을 써서 그림과 글로 화면을 채우고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다음 장면을 보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강풀이 대학 시절 그리던 대자보 만화 형식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갖고온 것이다. 곧 창작자나 독자 모두 손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출발과 결말을 정해놓고 연재에 들어가죠.
원작자는 신이 돼야 복선 깔며 긴장을 줄 수 있거든요.
살아있는 캐릭터는 저절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네티즌들은 페이지 넘기는 것도 귀찮아해요. 5년째 그리다보니 이 형식에 익숙해졌고, 독자들도 익숙해졌을 거예요.” 보기에 편한 ‘강풀식 만화’는 곧 인터넷 만화의 틀이 됐다. 그림을 못그리는 만화가-‘이야기’로 승부를 걸다
<아파트>의 한컷
모두 다 착한 사람이에요. 극악한 인물의 필요성을 못느낍니다. 어려부터 영화와 소설에 빠져 산 것이 이야기꾼이 된 밑천이다. 소설은 “한두권짜리 단편은 갑자기 그냥 끝나버리는 느낌이 들어” 열권 넘어가는 장편을 즐겨 읽었다. <삼국지>는 60번 읽었고, 김성종씨와 조정래씨의 소설, 중국 작가 김용의 작품은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고 한다.
단행본으로 묶어낸 시리즈물.
‘파워풀’ 강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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