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보통사람들에게 띄우는 초청장
수신 : 환경문제에 관심 없고, 죽어라 하고 책 안 읽는 대한민국 보통사람들
참조 : 한국의 모든 건설회사, 핵발전소, 청와대, 과자공장, 대법원, 대한민국의 모든 공사들, FTA협상단, 농약회사, 삼성경제연구소,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주자 등 힘센 사람들 다수
발신 : 환경책큰잔치 실행위원회 일동
경과보고 : 2002년 4월께였다. 북한산터널 때문에 “그거 문제 있다”라고 말하던 종교계 인사와 ‘걸개그림’이라는 예술장르를 세계에서 처음 개발한 설치예술가 최병수씨가 괴한에게 테러를 당했다. 괴한은 알고 보니 건설회사로부터 돈받고 잠시잠깐 테러리스트가 된 사람이었다. 여러 환경단체들이 탑골공원 앞에서 “골재장사 하면서 사람까지 때리지 말라”고 규탄대회를 열었다. 당시 ‘풀꽃세상’에서 일하던 필자도 정상명 대표와 함께 집회현장에 갔다.
비통한 얼굴로 테러를 규탄하는 도중 ‘환경정의’의 서왕진 처장을 만났다. 서 처장에게 “집회 마친 뒤 어디 갈 거냐?”고 물었더니, “강남의 무역센터인가 어딘가에 작은 부스를 하나 얻어 환경책 전시를 하려고 하는데, 그 섭외를 위해 한강을 건널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 삐까번쩍한 공산품들 전시하는 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 가까운 교보에 가서 교보 사장님 만나서 금년 환경의 날에 환경책잔치를 하겠다, 장소 좀 빌려주면 무지무지 고맙겠다, 앞으로도 계속 할 건데, 전시 도중 아마 환경책이 평소보다 더 팔릴 거다, 그렇게 말해 보시라”고 권했다.
전부터 좋은 제안이라면 추호도 망설임 없이 접수하곤 하던 서 처장은 규탄집회가 끝난 뒤, 곧장 교보문고에 갔다. 교보문고 권경현 사장은 서 처장의 제안을 흔쾌히 접수했다. 한 시대의 상당히 절박한 문제에 대한 대한민국 최대 책방 책임자의 양식이 돋보이는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얼마 후, 환경정의와 풀꽃평화연구소는 곧바로 환경책잔치실행위원회를 꾸렸다. 실행위는 평소 이 나라 환경문제에 대해 같은 생각을 지니고, 같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곤 하던 지인들로 구성되었다. 박병상(인천도시생태연구소장)님, 예진수(장서가)님, 최성일(출판평론가)님, 장성익(환경과생명 주간)님 등이 그들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환경책 선정 때문에 이수종(교사)님, 김정숙(교사)님도 합류했다. 그후, 2006년 11월 17일, 이제 다섯 번째 환경책큰잔치를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열게 되었다. 광화문점에서 세 차례, 강남점에서 두 번째인데, 금년부터는 환경의 날을 피해 가을에 행사를 펼친다. 환경의 날에는 다른 의미 있는 행사가 많아 책잔치가 묻혀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실행위에는 김종락(농부, 번역가)님, 유승준(교사)님, 조명래(단국대교수)님 등이 후에 합류했다. 서 처장이 유학중이라 실무주최측인 환경정의 대표로는 오성규처장이 애쓰고 있다. 실행위원장 감투는 서로 안 맡으려고 기를 쓴다.
‘환경책’은 어떤 책인가 : 어떤 책을 지목해 ‘환경책’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자연보호헌장 같은 게 담긴 책일까? 너도나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입에 올리는 웰빙을 위한 책일까? 아니면 유기농 요리책일까? 우리 실행위는 그런 실용서들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환경책’은 사람이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 책, 인간의 오만에 대해 겸손을 촉구하는 책, 한정된 지구자원과 욕망의 관계에서 “끝없는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성찰을 담은 책 <문명의 붕괴>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펼친 용어를 차용해 말하자면 환경위기에 대한 ‘예측’과 ‘인지’와 ‘해결을 위한 시도’가 담긴 책, 끝없이 되풀이되는 가장 큰 환경파괴인 전쟁과 평화에 관한 책, 그리하여 시간이 별로 없긴 하지만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책을 환경책의 범주로 생각했다. 기후변화처럼 이미 시작된 재앙으로부터도 우리는 삶을 긴급하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만약 좋은 환경책을 통해 ‘제대로 알면’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본 뒤에 깜냥껏 제가 선 자리에서 겸손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천의 영역으로 이행한다면 어쩜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책잔치의 캐치프레이즈는 자연스레 ‘새롭게 읽자, 다르게 살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환경책은 감동의 책들이다, 그것을 필자는 잔치 때마다 펴내는 70쪽짜리 행사안내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환경책에는 지금 우리네 살림살이가 최소한이나마 사람다운 삶으로 지속되기 위한 깊은 고민과 모색이 배어 있고,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과 뜨거운 감성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진행되는 우리 문명에 대한 진단이 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상식의 힘도 보여주고 있고, 자궁의 마음과 땅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 희망의 근거인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해법이 상상력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담겨 있습니다. 생명과 행복의 문제가 환경책보다 더 정직하게 담겨 있는 책들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환경책’이라 부르는 이 책들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책들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환경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라는 무지막지한 극언을 서슴지 않은 까닭은 평소 과감한 아전인수식 해석에 능해서라기보다 이 잔치의 운동성 때문이었다.
잔치내용 : 아주 진지하고 감동적인 환경책들이 매장에 주제별로 정성껏 전시되어, 1주일여 행사기간 이 보고서의 수신자들과 참조인들이 만져 보고, 훑어 보고, 계산대에서 계산한 뒤 정독되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각계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우리 시대의 환경고전’을 선정해 전시하기 시작했다. 행사 첫날에는 몸짓예술가 유진규씨의 마임 공연도 있고,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7가지 물건들은 ‘자전거, 부채, 공공도서관, 콘돔, 유기농현미, 내복, 지렁이’ 등이다.
한우물상 : 잔치 실행위원회는 2003년부터 우리 사회의 환경문제를 일찍부터 고민하고 애써 온 환경관련 저술가, 환경책 번역가, 환경전문출판사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한우물상'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도서출판 따님의 송대원 대표(2003),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대표(2003), 도서출판 그물코의 장은성 대표(2004), 이한중 환경책 전문번역가(2005) 등에게 한우물상을 드렸다. 올해는 좋은 나이에 귀한 책 몇 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 생태정치학자 고 문순홍 선생과 도서출판 달팽이의 김영조 대표에게 ‘한우물상’을 드리기로 했다.
특기할 일 : 잔치 실행위는 환경책을 다양한 곳에 기증해왔다. 새만금 소동으로 뜨겁던 2002년, 잔치를 벌이면서 그해에 선정된 ‘올해의 환경책’과 ‘우리 시대의 환경책’ 150여 권을 리어카에 담아 청와대에 전달하려다 실패했다. ‘읽고 다른 정치를 하라’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경찰력을 동원해 한사코 거절했다. 환경운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돈 들여 구한 좋은 책들을 거저 주겠다고 하는데도 청와대는 책이라면 질색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런 뼈아픈 좌절에도 불구하고 환경책실행위는 올해도 건설교통부와 새만금 판결 재판장들과 천성산 판결 재판장들과 한미 FTA협상팀과 식약청장 등에게 ‘올해의 환경책’을 기증할 예정이다(“끝없는 경제성장이 절대 가능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는 숙의 끝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책을 받거나말거나 책을 보내는 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다하는 일이라고 실행위는 생각하고 있다. 반갑게 받을 안천중학교, 영남중학교, 부평 기적의 도서관 등에는 ‘올해의 환경책 12권’ 1질씩을 보내기로 했다.
최성각/환경책큰잔치 실행위원, 풀꽃평화연구소장
소망 : 2002년 첫해에는 600여 권의 책들을 전시했는데, 금년 5회 잔치에는 800여권의 책이 전시될 예정이다. 환경책이 늘어나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긴 하다. 이 보고서의 수신자와 참조단체들은 교통이 좀 안 좋긴 하지만, 꼭 교보문고 강남점에 가 보시기 바란다.
학생들 논술에 혹시 도움이 될까 혈안이 된 ‘대치동 엄마들’, 이런 과소비와 대량실업, 생명파괴, 부익부빈익빈의 세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기후는 왜 이리도 피부로 느낄 만큼 변화되고 있을까? 한번밖에 허락되지 않은 이번 생을 정말 내가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하시던 분들 모두, 이번 책잔치의 주인들이다.
최성각/환경책큰잔치 실행위원, 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