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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마존’에서 지식을 주워올텐가?

등록 2006-10-12 21:44수정 2006-10-14 20:38

커버스토리/‘인문서적의 위기 선언’ 출판사에

얼마 전 전국의 인문학자들이 뭉쳤다. 인문학을 살려내라는 ‘데모’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오늘의 인문학을 위한 우리의 제언’을 내놓자 온 나라가 유행처럼 인문학을 논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모든 주부들이 다이어트를 말하는 것처럼. 제언 안에는 인문학계 내부의 자성이 ‘전혀’없지는 않았지만 약방에 감초처럼 보였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인문학 위기의 주범과 해결사로 정부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의 근시안적 안목은 그것대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들이 외친 구호대로 정부가 서둘러 인문학진흥기금, 인문한국위원회, 인문학발전위원회 등의 설치와 구성에 나서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인문학자들을 모셔서 정책방향을 묻기만 하면 인문학은 저절로 살아날까?

인문학은 삶의 길을 터놓는다. 좁다란 길일망정 누군가 터놓기만 하면 금세 효과가 나타나진 않지만 단지 몇 사람이 지나간 흔적 때문에라도 나중에 터

‘지식 생태계’ 붕괴돼 쓸만한 필자 없어서라고?

언제부턴가 당장 팔릴 책만 만드는 조급증

게다가 인터넷 할인판매로 사상누각 후유증

이제라도 ‘지식 인프라’ 구축해가며 큰소리 치자


널도 되고 고속도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길을 내고 누가 다닐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문학은 주로 서유럽에서 장구한 세월 동안 길을 내기 위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가져와 활용한 면이 크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서양의 경험적인 것을 매우 선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이는 온통 ‘지식의 수입상’만 넘친다고 일갈했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 길을 내겠다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적 인문학 발달은 우리 삶과 직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인문학 축적은 그야말로 이벤트 수준에 머물렀기에 우리 삶은 국론 분열의 위기상황에서도 학자들은 늘 극한대립의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투자하고 관심을 내비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BK(브레인코리아)21이나 학술진흥재단을 통해서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연구비가 지급됐지만 ‘대안’이 되는 성과물은 거의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답이 될 듯하다.

인문학은 교수 실력경기 아니다

인문학은 대학교수를 위한 실력 향상 경기가 아니다. 한국의 인문학이 정말로 살아남으려면 ‘데모’를 해서 모든 학자가 연구비를 지원받아 그만저만한 성과물을 내는‘하향평준화’만으로는 안 된다. 우선 당장은 먼저 지혜와 용기를 지닌 몇 사람의 ‘스타’가 등장해야 한다. 그들이 시대를 소화하고 미래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길을 먼저 제시하고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따라나설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자들이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67명의 출판인들도 ‘인문학 출판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들의 선언은 구구절절 옳아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일과성 이벤트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2000년에 세계 주요 나라의 출판인과 학자들이 참여해 ‘인간은 왜 책을 읽지 않게 됐는가’란 주제로 온라인상에서 ‘100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 토론에서 전 세계적으로 순문학과 고전, 인문계와 사회과학계 학술서 등으로 대표되는 ‘딱딱한 책’이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베스트셀러 중심주의 같은 소비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과 일본, 서유럽에서는 그런 양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하버드 비즈니스’를 익혀 승자가 되는 것이 젊은이들의 꿈이 되어버려 인문학이 기피당하고 결국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칠 사람마저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미국이 대표적이었다.

그렇다면 인문학 출판이 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이론적인 자양분을 제공한 빛나는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어떤가? 1980년대는 인문사회과학시대라 불렸다. 올해 초에 일각에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그때 이미 100만 부나 팔려나갔다. 어디 그뿐인가? 웬만한 인문서는 3천부가 기본이었으며 지금은 고사위기에 처한 소설 또한 정말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에도, 어쩌면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인문학 출판은 그런대로‘괜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문서는 언론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 책을 6월항쟁의 성공 경험을 가진 세대들이 즐겨 읽었다.

그러나 단맛에 너무 취해서인지 출판사들은 단기적 승부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한 해에 10만 부가 넘는 인문서, 심지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같은 밀리언셀러가 등장하자 당장 팔리는 책 만들기에 몰두했다. 경박단소한 책을 좇는 일이야 늘 있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너나없이 ‘아마존’ 강가로 달려가 그럴듯한 ‘돌덩이’를 주워들고 수석처럼 여기며 적절한 시기를 골라 책을 펴내는 일이 늘어났다. 또 그런 책을 인터넷 서점 등에서 할인해가며 파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결국 우리 인문출판은 규모가 작지만 열정 하나로 인문출판에 헌신하고 있는 몇몇 출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상누각만 세워왔던 것이고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문출판의 위기는 과거 출판시장의 주요독자층인 20대가 책을 기피하면서 지식인 저자와 대중 독자를 연결하고 독서를 통하여 문화적 공공권이 유지되는 ‘구조’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졸업정원제 도입 이후 질이 떨어진 대학에서는 인문학 교양과정마저 대강당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마이크로 강의하고 있다. 대학생은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의 한 사람'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대학의 권위는 실추했다. 그로 인해 대학에서는 책을 읽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됐으며,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이‘못 배운’ 한 때문에 대학생이 읽는 책을 열심히 찾아 읽던 분위기마저 사라져 교양서적 시장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출판인들이 성명서에서 “연구·저술-출판-독자로 순환되는 지식문화의 생태계가 근저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그래서 타당해 보인다. 생태계 자체가 흔들려 ‘쓸 만한’ 필자를 찾기 어려우니‘아마존’ 강가로 달려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총서 한질쯤은 갖췄던 출판사

1980년대의 빛나는 성과는 강단이나 언론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국가권력의 온갖 탄압 속에서 박제화된 언론의 ‘대안’이 되겠다는 열정 하나로 이뤄낸 것이 아닌가? 그때 모름지기 인문학 출판을 한다는 웬만한 출판사에서는 ‘총서’나 ‘신서’시리즈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그것으로 일부 출판사는 자본을 축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출판사마저도 지식사회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을 투여해 전세계에서 보기 드문‘출판도시’를 이뤄낸 역량을 생각하면 적어도 이 땅에 ‘한국사상전집’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국가한테 큰 소리를 치거나 인문학의 ‘최대수혜자’가 될 기업들에게 메세나 출판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출판계는 이제라도 책 한 권으로 단기적 승부를 내려는 조급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효과가 드러날 인프라구축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정보화 사회에서 출판이 살아남을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해지려면 1980년대의 ‘열정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인재부터 키워야 한다. 아무리 전통과 역사가 있는 출판사라도 열정과 실력은커녕 초보자 수준의 편집자만 있는 상태라면 어떤 처방도 소용없다. 출판단체가 운영하는 교육기관도 교정·교열이나 제작 등 산업사회 시대에 생산라인에 앉힐 정도의 능력만을 키우는 수준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이 있다. 인문학과 인문출판이 살아나려면 먼저 학자들의 글쓰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출판인 성명에서도 언급했지만 “창조적 글쓰기와 지식 생산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연구 평가방식과 관행은 개선”되어야 한다. 지금 학계에 만연한 ‘각주’가 더덕더덕 붙은 논문은 일정한 틀에 내용을 억지로 짜 맞추는 형식이다. 그런 수준은 디지털 사회에서 용도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오늘날 정보의 ‘소유권’을 가진 독자들은 블로그 등에서 스스로 정보를 편집까지 하면서 통합적 사고로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고 있다. 그런 시대에 획일적인 형식에 억지로 짜 맞추는 글쓰기가 통할까?

결국 인문학 위기의 원인은 학자나 출판인 스스로 불러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자와 출판인들은 ‘데모’에 앞서 통절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요구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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