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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영어만능 신화’ 넘어 ‘한글 한류’ 만들자

등록 2006-10-08 19:14수정 2006-10-08 19:24

세계화시대 우리말글 진흥책 좌담
훈민정음 반포 560돌을 맞은 지금 우리는 ‘조선학’의 큰봉우리 세종이 끼친 한글 덕분에 무척 편리한 언어생활을 누리고 산다. 천·지·인 등 한글 창제 원리는 인간과 전자기기를 가깝게 하는 데도 원용된다. 한편으로 개방·세계화로 천년 넘게 한문이 끼치던 폐단이 영어나 로마자로 옮아가는 현실도 맞닥뜨렸다. 이로써 오랜 문화공동체를 깨뜨릴 조짐마저 보인다. 올해부터 국경일로 승격된 한글날에 즈음하여 한글문화 진흥 방안, 외국어 문제, 국내외 이주민·외국인의 한국어 교육, 남북 말글 교류와 통합, 지역어 활성화 등 현안들을 전문가 좌담으로 짚어본다.

사회=한글과 관련하여 개방·세계화 시대에 새롭게 짚어봐야 할 의제가 있다면?

남영신 회장=‘한글을 세계인의 눈에 띄게 하자!(디자인·상호·상품) 한국어를 세계인이 알게 하자! 한국문화를 세계인에게 알리자!’ 정도로 간추릴 수 있지 않을까?

이광석 교수=언어주권 확보가 긴요하다. 질높은 정보통신, 마음의 가치, 문화, 활동 터전의 세계화가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이라고 한다. 세계화는 언어의 중요성을 증가시킨다. 지리·사회·문화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소통과 행동을 낳을 수 있게 하는 까닭이다. 개방은 정치·경제·문화 갈등을 동반하는데, 두드러지는 것이 언어주권과 문화공동체(정체성) 문제다. 예컨대 요즘 진행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협정 영문본이 한글본보다 우선한다거나 협정에 영향을 끼치는 우리 법률을 “세계무역기구 공식언어인 영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 하나로 공포하라”는 미국의 요구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명백한 언어주권 침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우리 쪽에서는 대수롭잖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손희하 본부장=새터민, 외국인 이주자들의 안정적인 적응·정착을 돕는 데 절실한 것이 한국어와 문화 가르치기 아닌가. 또 서울말 중심의 표준어 정책이 성공한 만큼 사투리가 사라져 가는데, 규범 위주 표준어 정책에서 지역어의 다양성을 싸안는 쪽으로 가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우리말의 풍부한 표현을 생각해서도 그렇다.


남영신 “한국어 문화권 건설 적극 추진해야”
이광석 “개방·세계화될수록 언어주권 지키기 중요”
손희하 “남북 언어교류 활발 국어발전 예산 절실”

사회=그런 점들을 바탕으로 우리말글 문제와 현실을 가다듬는다면 좋은 결과가 올 것 같다. 한편으로 영어가 심각한 사회·국가적 문제로 다가선 지 오랜데 …?


=영어 교육이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고, 국어 교육은 우리말 어법·어휘·표현 방식 정리, 한글 표기 다양화, 언어생활 수준을 높이려는 분야이므로 나눠 다룰 일이다. 예컨대 개인들이 수천만원을 들여 미국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와도 쓸모가 없다면 이는 개인 책임이다. 나라에서는 이런 낭비를 줄이는 정책을 펴면 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영어나 로마자를 써대는 풍조는 민관 두루 힘을 합쳐 바로잡을 일이다. 외래어·외국어 남발 현실은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

=영어신화 문제와 영어접촉 문제를 분리해 봐야 한다. 앞엣것은 정상수준을 넘어 그게 모두인 양 믿는 심리 상태다. 대중들은 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주장하지만 정체성(문화공동체)엔 관심이 낮다. 최근 대학가요제에 나온 한 그룹 이름이 ‘뮤즈 그레인’(muz grain)이고 그들이 부른 노래가 ‘인투 더 레인’(into the rain)인데, ‘빗속으로’는 안 통한다는 얘기다. 이는 영어신화(영어만능)에 사로잡힌 흔한 사례로서, 이를 누그러뜨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말만이 아니라 그 문화를 함께 배우는 것이다. 제나라 말과 문화를 익히기도 전에 다른 말과 문화에 물들어 혼재하게 되면 온갖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회=국어기본법이 일부 종사자 위주, 소수의 수혜자 중심으로 시행된다는 비판이 있다. 교육부·문화부·국어원 등 당국에서 하는 일은 잘되어 간다고 보는가?

=기본법이 정부·언론·교육 쪽 국어 사용에 두루 걸쳐 있는데도 벌칙조항이 없어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한편, 이로써 관련자들이 고민하게 된 점, 국어상담소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 활동하게 된 점은 성과로 꼽을 수 있겠다.

=국어원도 정책 생산 위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의 국어능력을 높이는 방법, 한국어 보급과 문화 교류 증대, 각종 용어 정비, 사전 편찬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사회=‘한류’와 한국어의 관련성은?

=한류 속에는 한국어 보급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어 문화권을 건설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맞는 말씀이다. 이는 외국인 한국어 교육과도 연관된다. 한국학교·한국문화원을 통해 한국어 보급을 하고 있으나 폭발적인 한국어 수강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국어문화학교를 동남아·미주·유럽 등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사회=국어문화 발전 예산이나 민간단체 연구지원 규모는? 경기도만 해도 짓는 데 드는 수천억원은 제쳐두더라도 영어마을(안산·파주) 두 곳의 한 해 운영비가 300억원에 가깝다고 한다.

=사회의 재원이 쓰일 곳에 제대로 쓰이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국어원 예산은 80억원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여기서 민간연구를 지원하는 예산은 30억원 남짓이다. 국어가 발전하고 민간 어문단체들이 제대로 일하도록 하려면 대규모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국어발전기금’ 설치를 주장하고 싶다. 간판 따위에 외국어를 쓸 때(방송·신문·기업체 포함) 선택의 자유를 주는 대신 우리 문화공동체에 참여하지 아니한 대가로 부담금 또는 벌금을 물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하리라 본다. 이를 국어발전 재원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나.

사회=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남북 말글통합과 국내 외국인 한국어 교육 문제를 짚어달라.

=교류를 통해서 같아지도록 이끄는 일이 앞서야 한다고 본다. 재외동포를 포함한 한국어 사용자를 위한 체계적이고 배우기 쉬운 교재도 개발해야 한다.

=언어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바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언어가 갈라진 나라는 늘 가난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곧 통일로 가는 강력한 자산이 언어라는 말과 같다. 국내 이주 외국인 교육문제는 언어복지 문제로 보고자 한다. 다문화 사회로 가는 현실에서 언어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는 시장기능에 맡길 수 없다. 나라에서 개입해야 한다. 국어정책의 민간화·지식산업화도 필요하다. 한류·음악·미술, 장애인 언어치료, 소통방식 연구 등에 전문적인 연구·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여러 경로에 걸친 남북 언어교류 사업이나 통일부 쪽의 겨레말큰사전 사업 등 최근 남북 언어 교류·통합 움직임과 만남이 잦아져 희망적이다. 국내 외국인 한국어 교육은 퇴임 교사 활용 등을 통한 맞춤형 교육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구체적인 방안들과 함께 현안을 두루 짚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정리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참석자

남영신 전국국어상담소연합회 회장
이광석 경북대 법대 교수(정책학)
손희하 국립국어원 국어정책진흥본부장

사회 :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때·곳 : 10월2일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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